베트남은 우리와 닮은 점을 많이 갖고 있다. 우선 세계에서 드물게 우리와 중국처럼 왕조실록을 갖고 있는 나라이고 공자를 모시는 문묘라든가 유교교육의 산실 국자감이 있는 것 또한 그렇다. 왕조의 왕 이름도 우리처럼 태조니 성종이니 같다. 베트남도 중국의 영향을 받아 우리의 선조들처럼 한자를 쓰고 한시를 읊으며 유교를 숭상했던 나라여서 그럴 게다.
여기에 900여 년 전 망국의 왕족 하나가 정적 살육에서 탈출해 고려로 건너와 귀하하고 뿌리를 내려 사돈까지 된 셈 또한 그렇다. 그 사연은 이렇다.
고대로부터 베트남과 한국 두 나라는 모두 국경을 맞대고 있던 중국과는 치열한 외교와 전쟁은 피할수 없는 운명이었다. B.C. 100년경 중국 한 무제는 베트남 북부 지역을 점령하고 일곱개의 7군을 설치했다. 마치 고조선 시대에 낙랑 등 한4군을 설치했던 것과 같이 말이다.
베트남은 이 후 천 년이 흐른 서기 938년에 독립을 했지만 외적으로는 중국의 압박이 심하고 내적으로는 권력투쟁으로 매우 혼란했다. 이 때 리궁윈(李公蘊)이 새 왕조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대월(大越)이라 하고 수도를 '탕롱(昇龍)'으로 옮겼다. 이로써 베트남의 李朝(이조)가 시작되고 그가 곧 이 태조였던 거다.
리 왕조는 이후 200년간 번영했는데 국정이 문란 한 틈을 타 병권을 쥐고 있던 왕후의 사촌이 왕위를 찬탈하고 쩐 씨(陳氏) 왕조를 새로 세웠다. 그리고는 리 왕족을 참담하게 모조리 멸족했다.
이 때 왕족 가운데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이가 '리롱뜨엉'이었다. 중국 송나라를 거쳐 이른 곳이 고려의 황해도 웅진반도 화산(花山)이었다. 여기서 그는 당시 고려에 몽골군이 침입하자 백성들과 함께 토성을 쌓아 버티며 싸워 막아냈다. 이 공을 높이 치하한 고려 고종은 그를 고려여인과 결혼시키고 화산군(花山君)에 봉했다.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이용상의 선조 베트남 이 태조가 도읍을 정한 '탕롱(昇龍)'은 '승천하는 용'이라는 뜻인데 이 곳이 바로 1000년의 고도 오늘날 하노이다. 역사적으로 하노이는 1946년부터 1954년까지 독립을 위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중심이었고, 1954년부터 1975년 베트남전이 끝날 때까지 북 베트남, 월맹의 수도였다가 1976년 통일 베트남의 수도가 됐다. 얼마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베트남 전쟁 당시 미 해군 폭격기 조종사였던 매케인 상원의원이 추락해 포로생활을 했던 곳도 하노이였다.
더 나아가 프랑스, 미국 등 서구와 싸운 사회주의 성지(聖地)였던 하노이는 '도이머이'즉, 개방, 개혁정책의 중심지로 변신하고 미국과의 관계마저 급전환 시킨 정치적 상징성도 있는 곳이다.
이런 배경을 갖고 있는 하노이가 이달 말 열릴 미·북 2차 정상회담 장소로 결정되었다. 미국은 휴양 도시 다낭을 원했으나 북한은 자국 대사관이 있는 하노이를 고집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할아버지 김일성이 1958년, 1964년 호찌민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혈맹관계를 과시했던 곳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과연 김정은은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이러한 하노이의 역사적 모습 중 어떠한 면을 선택할지 자못 궁금하다. 이로부터 비핵화의 획기적인 결과가 도출될 는 지 아니면 또 한번의 '싱가포르 회담' 같은 쇼로 그치고 말 지 세계는 지켜보고 있는 거다.
2019-02-19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