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한 때 지구는 평평하며, 해가 지구를 따라 돈다고 여겼다. 태양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만한 천체물리학적 안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학적 상식이 그러한데 역사적 상식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역사적 사실 자체가 변할리가 없지만 역사서술은 시대에 따라, 역사가에 의해 바뀌기도 한다. 더 배운 지식인일수록 고착된 상식들에는 결정적인 허실이 개입돼어 있다.
세계지도가 그 대표 적인 사례다. 실제 아프리카 아시아에 비해 현저히 좁은 유럽이 상당히 부풀려 그려져 있다. 서구인의 안목으로 과장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오스만 터키 제국에 의해 동로마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되기까지 서로마의 후신인 서유럽은 몇몇 왕족 가계의 소유물이었다. 서양사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연구하려면 당연히 동유럽 과 소아시아, 북아프리카의 역사에 주목해야 한다.
영국, 독일, 프랑스와 같은 서유럽 국가들의 역사에는 익숙하면서, 동유럽이나 터키 등의 소아시아 국가 역사지리에는 무지한 경우가 많다. 세계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중해를 중심으로 서양 역사의 변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아챌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무지는 한중일,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의 시원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적용된다.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대륙 중원의 문화와 변방 오랑캐의 야만이라는 이분법으로 역사를 배워왔다. 춘추전국시대에 숱한 왕조들이 명멸하는 동안 고조선이 1000년 넘게 삼한을 통치했다. 고구려 또한 700년 이상 존속하며 동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했다.
어떻게 이런 역사현상이 가능했을까? 황하문명보다 1000년 이상 앞선 발해연안, 요하지역의 고조선 문명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내몽골 지역을 중심으로 홍산문화가 발굴되기 시작하자 중국은 이전에는 오랑캐 야만지역이라고 폄하하던 곳을 중국의 조상 황제 유웅씨의 땅이라고 서둘러 봉합하고 있다. 소위 동북공정이 그것이다. 중국만 우리 한겨레의 뿌리인 고조선 역사를 훔쳐간 것이 아니다.
19세기 말 일본학자 백조고길(시라토리 구라키치)이 써낸 '조선사'에는 일본이 고대부터 조선을 경영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 등장했다. 이에 분격하여 오늘날 민족사학의 효시인 신채호의 '조선상고사'가 집필됐다. 이어 위당 정인보의 '조선사 연구'가 발간됐다. 위당과 동갑인 '고사변'의 저자 구제강(고힐강)은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을 내놓은 중국의 푸쓰녠(부사년)과 함께 중원 중심의 동아시아 역사를 동이족과 화하족의 상호경쟁과 융합의 관점으로 역사관을 넓힌 중 국사가들이다.
구제강에게서 배우고 북경대 박사학위 주제로 고조선 연구에 주력한 이가 북한의 리지린이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 상나라 역사를 연구하던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가 남한에서도 출판됐다.
최근 이덕일 교수가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 번역 해제를 내놓았다고 한다. 지난 100여년 간 중국 일본 한국의 이러한 역사연구의 흐름을 일견하면 왜 고조선이 그토록 중요한 주제인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학자들이야말로 한겨례 역사의 뿌리를 바로알 수 있도록 한민족 역사의 외연을 확대시켜준 분들이기에 감사할 수 밖에 없다.
2019-03-14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