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데 있어서 단문(短文)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자칫 중문(重文)이나 복문(復文)은 글 쓰는 이의 의도와 달리 뜻이 헷갈려 전달될 수 있는 반면 단문(短文)은 그 메시지가 간결하고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설픈 단문(短文)이 되면 오히려 모자라고 투박한 글이 될 수도 있다.
'단문(短文)의 대가'라 하면 단연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그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를 시기하는 친구 하나가 헤밍웨이에게 그렇게나 글을 잘 쓴다면 여섯 단어로 된 소설을 써보라고 빈정댔다. 그러자 그는 망설임 없이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팝니다. 한 번도 신지 않은 아기 신발)이라고 썼다. 가슴이 저미는 문장이었다. 신발을 신지 못하게 된 아이나 부모에 대한 기구한 사연에 말을 잊게 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헤밍웨이의 단문 형식이랄 수 있는 게 바로 트위터다. 처음에는 140자까지만 허용했지만 이후 경쟁 소셜 미디어에 맞서기 위해 두 배인 280자로 늘렸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아쉽다. 나는 140자의 헤밍웨이인데…'라고.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가 쓴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에 나오는 내용이다.
원색적인 표현을 즐기는 그의 글이 헤밍웨이와 비교되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트위터 훨로어는 2400만 명이나 된다. 언론의 비판 여과없이 직접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애용하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트윗은 언제 어떤 폭탄 발언이 터질 지 모르기 때문에 전 세계 언론들은 밤낮없이 이를 지켜보게 되는 처지가 되었다.
지난달 29일 새벽 '김정은 위원장과 DMZ에서 만나 악수하고 싶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올라왔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다음날 오후 DMZ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이루어졌다. 트윗을 날린지 불과 몇 시간 뒤 의심 많다는 북한이 '공식 제안은 못 받았지만, 흥미로운 제안'이라면서 즉답하자 전 세계도 바로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에 대해 희망과 회의 섞인 구구한 해석과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를 보면서 찰스 터너 조이 전 미 해군 제독이 생각난다. 2년여에 걸친 6·25전쟁 정전협상 때 유엔 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그는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라는 명저를 남겼다. 북한의 집요한 협상술과 심리전 그리고 그들의 억지와 정치선전, 지연전술로 무던히 애를 먹은 경험에서 쓴 대북 협상 실수와 좌절의 처절한 고백서다.
제독이 충고한 것 중 몇가지만 소개하면, 회담을 열자는 그들의 제의에 서둘러 반응하지 마라. 협상팀은 최고의 자질을 갖춘 엘리트들이어야 한다. 계급이나 명성, 직위는 둘째다. 일방적으로 회담장소를 선정하도록 해서도 안되며, 단순히 회담진척을 위해 크든 작든 아무 것도 얻지 않고 양보만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서두르지 말고 언제든 협상종결이나 연기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하게 하라.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장황하게 발언하지 마라. 이는 교활한 공산주의 선전용으로 제공된다. 공산주의자들은 반응이 별로 없는 상대를 당혹해하고 두려워한다 등이다.
한마디로 '공산주의자의 약속은 어떤 방식이든 절대로 믿지 마라. 행동만을 믿어라.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이 진실로 알아듣는 것은 오직 힘뿐이다.' 라는 거다. 조이 제독의 충언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2019-07-09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