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카터 대통령이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공항에서 '폴란드 국민의 열망을 알고 싶다고 인사했다. 하지만 이는 엉뚱하게도 '폴란드 사람에게 욕정을 느낀다'로 통역돼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오역은 해명과 사과로 해결될 수도 있는 경우이긴 하나 우연한 실수나 오역이 엄청난 역사의 결과를 야기한 경우도 많다.
1989년 동독 대변인이었던 샤보브스키는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출국비자가 누구에게나 발급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자 기자들이 '언제 시행하느냐'고 물었다. 답변이 준비돼 있지 않던 그는 자료를 뒤적이며 머뭇거리다가 '내가 아는 한 지금'이라고 실언했다. 그의 이 말은 '국경이 개방됐다'를 거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로 보도됐다. 이로써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동서독은 이듬해 통일됐던 거다.
이는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사건이긴 하지만 국가 간 소통에서 오역은 치명적인 사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1956년 구 소련의 흐루쇼프가 모스크바 주재 폴란드 대사관 리셉션에서 NATO 회원국 대사들에게 한 연설 중 한 대목이 문제가 됐다.
러시아 원문을 영어로 문자 그대로 옮겨 'We will bury you' 즉, '우리는 당신네들을 묻어버릴 것이다'로 번역됐다. 그러자 이것이 미국에게 서방에 대한 공격 의도로 받아들여지면서 미소 냉전이 더욱 치열해 졌던 거다. 헌데 실제 이 말은 '우리는 당신들보다 오래 살아 당신들의 장례식에 참석할 것이다'란 뜻이란다. 다시 말해 '서방의 자본주의를 끝장내겠다'는 뜻이 아니라 '공산주의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가 오역된 거다.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오역은 원자폭탄 투하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국은 포츠담 회담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은 연합국의 공식적인 최후 통첩이 올 때까지 항복을 미루기로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쿠사츠의 입장을 견지한다'고 발표했다. 헌데 '모쿠사츠'란 이 일본어는 서구 언어들에 맞는 적당한 단어가 없을 뿐 아니라 '논평을 당분간 미룬다'와 '거부하다'라는 이중적 의미가 있는 게 문제였다. 일본은 '논평을 당분간 미룬다'는 뜻이었겠지만 반대로 '무시한다'는 뜻으로 잘못 영역되면서 이에 분노한 트루먼 대통령이 사흘 후 원폭투하를 지시하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한일 양국은 같은 한자권 문화임에도 미묘한 언어 차이로 외교 갈등이 증폭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같은 한자말이라도 의미나 뉘앙스가 전혀 다른 경우 때문이다.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자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오히려 큰소리치는 상황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를 일본 언론들은 '도둑이 뻔뻔스럽다'고 번역했다. 이어 일본 외무성 차관급 간부는 '품위 없는 말을 쓰는 것 무례하다'고 까지 비난했다.
한국에서 적반하장은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화를 낸다'는 의미이지만 일본어에는 없는 이 말을 일본 언론들이 '도둑'적(賊)자를 문자 그대로만 번역하면서 사태가 악화된 거라고 한다.
번역, 통역은 어렵다. 그러다 보니 '통역은 반역이다'라고 하는 말은 오역을 두고 하는 말일 거다.
2019-08-20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