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도는 아들이 돌아온다는 날 아침부터 조바심이 났다. 6.25 전쟁에 참전한 아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 너무 반갑고 좋았다. 상처한 만도에게 유일한 피붙이인 진수는 3대 독자다. 귀하고 귀한 아들의 귀향 소식에 들떠 일찌감치 정거장에 나간 만도는 왠지 모를 불안이 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온다는 아들 말을 듣고 나니 더 불안하다.
만도는 전쟁터에서 한쪽 팔을 잃었다. 만도는 일제 강점기 때 지용에 끌려갔다가 전쟁터에서 한쪽 팔을 잃었다.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고 심지에 불을 붙이고 뛰어나오다 연합군 공습에 당황한 나머지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한 동굴로 다시 뛰어들어가 터지는 다이너마이트에 한쪽 팔을 잃었다.
마중 나가는 길에 외나무다리를 건너며 옛날 생각을 했다. 언젠가 술에 취한 채 외나무다리를 거너다 물에 빠져 옷을 말리던 일을 생각했다. 팔이 없는 것을 감추려고 물속에 들어가 종일을 기다렸던 서글픈 기억이다.
일찌감치 역에 도착해 아들을 기다린다. 드디어 도착한 기차에서 아들이 안 보인다. 초조해하는데 뒤에서 "아부지!"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서는데 아들의 헐렁한 가랑이가 눈에 들어왔다. 걱정했던 대로 아들은 상이용사가 되었다. 만도는 억장이 무너졌지만 태연한척하며, 밝은 얼굴로 아들을 위로하며 용기를 주려 애썼다.
만도와 진수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만도가 오면서 건넜던 외나무다리를 만난다. 외다리 목발의 진수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이 불가능했다. 만도는 머뭇거리는 진수에게 등을 내민다. 만도는 한쪽 팔로 아들을 업고 진수는 지팡이와 고등어를 양손에 들고 아버지의 등에 업힌다. 둘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모습은 눈물겹도록 아프고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이상은 하근찬의 소설 "수난이대(受難二代)"의 줄거리다. 소설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각자 세대의 전쟁으로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 시절에 부자가 불구가 된 것이다. 이 집은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이 소설은 흔히 볼 수 있는 전쟁의 잔혹함과 후유증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 소설은 전쟁의 상처 치유법을 소개한다.
아들을 위해 고등어를 사고, 국수를 사 주는 것은 투박하지만 찐한 아버지 사랑을 보여준다. 팔이 없는 아버지가 다리가 없는 아들을 등에 없고 함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은 눈물이 핑 돌만큼 가슴 뭉클하다. 이 모습은 장애와 상처의 강을 서로 도와 함께 건너는 부자의 지혜와 사랑을 보여준다. 그들은 무섭고 참혹한 전쟁의 상처를 가족애로 극복한다.
6월의 소설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자리에서 생각한 작품이 이 소설 "수난이대"다. 6.25 전쟁의 아픔과 부자의 사랑을 찐하게 다뤘다. 필자는 6.25 한국전쟁 통에 월남하신 어른들 틈에서 자랐다. 모 교회 목사님은 온 가족을 두고 홀로 월남하셔서 평생 수절하신 성자시다. 6월만 되면 온 교회가 울었고, 설과 추석 명절마다 예배당은 촉촉이 젖었다.
6월의 아픔이 어디 이뿐이랴? 모진 목숨 버티며 살았던 만도와 진수들이 어디 한둘이랴? 동네마다 고을마다 만도와 진수는 있었다. 아들 진수는 아버지 가슴을 보듬고, 아버지 만도는 아들 진수를 업고 강을 건너듯 그렇게 모진 세월을 건넜다. 다리를 잃고 억장이 무너지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있어서 든든하다. 난리 통에도 아버지는 위대했다. 팔을 잃어도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6.25를 앞둔 아버지날에 다시 추려보는 소설 '수난이대'이다.
2020-06-22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