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한 여인 '진영'의 굴곡진 삶의 이야기다. 남편이 9.28수복 전야에 폭사했다. 남편을 잃은 진영은 아이를 업고 피란 생활을 했고, 전쟁 후 진영은 아들만 보고 살았다. 그런데 아들 문수가 9살 되는 여름에 죽었다. 허무하게 아들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일찍부터 홀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외동딸인 진영은 아들을 잃은 것이 너무 뼈아프다. 아들 문수는 길에서 넘어져 병원에서 뇌수술을 하다가 죽었다. 아들의 죽음은 용납하기 힘들다. 아들을 잃은 어미의 마음이 편할 리야 없겠지만 의사의 무관심 탓에 아들이 죽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의사는 중대한 뇌수술을 하면서 엑스레이도 찍어보지 않았다. 엑스레이를 찍지도 않고 수술을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약도 준비하지 않고 수술을 시작했다. 마취도 안 한 아들은 도수장의 망아지처럼 죽어갔다. 진영의 눈에 그 의사는 죽어가는 아들에게 냉담했고 무능했다. 그렇게 아들은 죽었다. 진영은 수술실 아들의 울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서 잠을 못 잔다.
남편과 아들을 잃고 난 진영이는 '사회가 정상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온통 믿을 수 없었다. 곗돈을 떼어먹어 버린 아줌마의 안내로 간 성당에서 매미채를 돌리며 돈을 걷는 것을 보고 도망치듯 나왔다. 더욱이 신앙을 소개하려던 아주머니는 대학생 상배에게 사기를 당해 큰돈을 잃는다. 진영은 사기 치는 상배학생과 그의 아버지도 기가 막혔지만, 곗돈을 떼어먹은 아주머니가 큰돈을 뒤로 굴린 것에 더 큰 상처를 받는다.
폐결핵에 걸려서 찾아가는 병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병원들이 한결같이 엉터리였다. Y병원은 주사약의 분량을 속였다. 그래서 찾아간 동네 병원에서는 신출내기 간호사도 믿음이 안 갔지만, 만난 의사가 근처에 사는 건달이었다. 거리에는 가짜 주사약이 난무하고 있었다. 진영은 기겁한다.
그뿐만 아니다, 탁발승이 와서는 시주로 받은 쌀을 팔고 갔다. 가짜 중이었다. 나아가 절에서는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대접이 달라진다. 아들의 위패를 모신 절의 스님들이 너무 계산적인 것을 보면서 진영은 큰 상처를 받는다. 이런 절에다 아들을 맡겨 두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진영은 마음을 굳게 먹고 절에 보관 중인 아들 문수의 위패와 사진을 찾아 불에 태운다. 시줏돈으로 불심을 평가하는 절에서 아들의 영혼이 편안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들의 위패를 태움으로 진영은 자신을 괴롭히는 불신시대에 항거하자는 다짐을 하면서 산에서 내려온다. 순박한 여인 진영은 믿을 수 없는 불신세상에서 독하게 변한 것이다.
이상은 박경리의 소설 "불신시대"줄거리다. 가련한 여인"진영"이 모진 세월을 통해서 모질게 변한다. 그녀는 모진 선택을 해서 아들의 위패를 태우고 불신 시대를 대항하여 싸울 결심을 한다. 작가 박경리는 믿을 수 없는 세상을 풍자하면서 불신에 시달린 여인의 독한 변신을 그리고 있다.
필자는 함께 군 생활을 했던 인연으로 희노애락을 나누는 옛 군인들이 많다. 30수년을 제복을 입고 조국의 산하를 누빈 순박한 사람들이다. 최근 그들과 백선엽 장군의 장례식 소식을 나누며 자신들의 삶이 조롱받고 멸시받는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들에게 '모진' 마음이 보인다. 왜 이 순박한 사람들을 모질게 만들까? 왜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사람들을 조롱하고 멸시할까?
2020-07-20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