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재판소에 근무하는 예브게니 페트로비치 검사는 7살짜리 아들이 담배를 피우는 소식을 듣는다. 그런데 담배 연기를 내뿜는 7살짜리 녀석을 상상하면 실소가 절로 나온다. 혼자 웃던 검사는 자신의 어린 시절 담배 피우던 친구들을 떠올리고 화들짝 정신을 차린다. 담배를 피우다 적발된 친구들은 매를 맞고, 퇴학을 당했고 인생이 망가졌다.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아들 문제가 심각했다.
아들을 불러 “아들! 너 담배 피웠니?” 묻는데 “예, 한번 피워 봤어요!”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한다. 7살짜리 아들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에 검사 아빠는 당황한다. 가정교사가 담배 피우는 것을 세 번 목격한 것을 얘기하면서 세 가지 죄(담배 피운 것, 담배를 훔친 것, 그리고 거짓말 한 것)를 지적한다. 녀석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반성하는 기색도 미안한 기색도 없다. 죄책감 없는 녀석을 혼내는 것도, 담배 해악의 설명도 어렵다. 검사가 7살짜리 아들의 잘못에 속수무책이다.
그런데 녀석이 갑자기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른다. 당황스럽지만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옛날에 늙은 왕이 아름다운 유리 궁전에 살았단다. 이 궁전에 멋진 정원이 있었고, 정원에는 온갖 과실나무와 꽃들이 있었고, 예쁜 새들이 노래했단다. 정원의 분수대 물기둥은 엄청 높아 분수대 옆 큰 버드나무 꼭대기에 닿았단다.”
“늙은 왕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었단다. 그런데, 왕자는 말도 잘 듣고, 변덕도 부리지 않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규칙적으로 생활했어. 그런데 그 왕자는 담배를 피우는 단점이 있었단다.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운 왕자는 스무 살 때 폐병으로 죽었고, 늙은 왕은 나라를 지키지 못했고, 나쁜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왕을 죽이고 궁궐과 정원도 분수도 망쳐버렸단다.” 검사는 스스로 이런 이야기의 결말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런데 생각에 잠겨 진지하게 얘기를 듣던 아들이 한숨을 쉬더니 낙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을 거예요.” 녀석이 이렇게 싱겁게 승복한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논리와 설득에도 꿈쩍도 하지 않던 녀석이 옛날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것이다. 철부지 녀석은 논리나 공포감이 아닌 감동에 굴복한 것이다.
이상은 안톤 체홉의 단편 “집에서”의 줄거리다. 체홉은 위협과 논리로 무장한 검사 아빠의 무능을 고발한다. 아들의 변화를 이끈 것은 아빠의 위협도 검사의 칼 같은 논리도 아니었고 감동이었다. 감동이 힘이다!
세상이 시끄럽다. 대화도 설득도 없는 난장판이다. 가정도, 사회도 정가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한국 국회의 5분 발언이 회자(膾炙)된다. 같은 편은 물론 반대도 그 연설을 인정하는 듯하다. 그 연설은 감동이 있었다. 감동이 없는 세상에 던진 신선한 충격이다.
감동에 목마른 시대다. 감동받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감동을 주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다. 감동을 사모하자! 감동을 유통하자! 감동을 받자!
2020-08-17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