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녀'는 원래 가난하지만 정직한 농가에서 제대로 배우고 자란 처녀였다. 복녀는 15살에 20년 연상인 홀아비에게 80원에 팔여 시집간다. 그는 지독한 게으름뱅이였다. 그는 유산을 좀 받았으나 게으름 때문에 완전히 망해 마지막 돈으로 복녀를 샀다. 그래서 복녀는 신혼부터 지지리 가난했다.
상황이 점점 어려워 복녀는 결국 칠성문 밖 빈민굴로 간다. 그곳은 주업이 구걸이고 부업이 매음과 도둑질이었다. 복녀도 구걸을 나가보지만 무안만 당한다. 그래도 복녀는 매음은 하지 않는다. 그 무렵 산에 송충이가 들끓어 빈민굴 여인들에게 송충이 잡이 부업을 준다.
복녀도 송충이 잡이에 나가 품삯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복녀는 감독 주변에서 맴돌며 감독관에게 몸을 주고 품삯을 더 받는 젊은 여인들을 본다. 그리고 복녀도 감독에게 몸을 주고 돈을 더 받는다. 이런 쏠쏠한 재미에 복녀 인생관도 바뀐다. 복녀는 그렇게 돈을 버는 것의 정당성을 찾는다.
도덕의 굴레에 벗어난 복녀는 어느 날 감자밭에서 감자를 훔치다 왕 서방에게 잡힌다. 복녀는 몸을 주고 도둑질용서도 받고 돈 3원을 더 받는다. 수지맞았다고 생각한 복녀는 왕 서방과 대놓고 서방질을 하고 복녀 남편은 알고도 모른 체한다. 이렇게 돈을 벌어 복녀는 빈민촌 부자로 산다.
봄이 왔을 때 왕 서방은 돈 백 원에 처녀 하나를 사서 장가를 갔다. 새색시가 오는 날 복녀는 왕 서방에게 찾아가 새색시를 두고 도망가자고 했지만 왕서방은 듣지 않았다. 눈에 천불이 난 복녀는 낫을 들고 왕 서방에게 덤볐다. 그러나 복녀의 손에 있던 낫은 어느덧 왕 서방에게 넘어갔고, 왕서방이 휘두른 낫에 복녀 목이 찔리고 복녀는 꼬꾸라져 죽었다.
복녀의 송장은 죽은 지 사흘이 지나도록 무덤에 가지 못했다. 복녀 남편과 왕서방은 흥정을 했다. 사흘 후 복녀의 시체를 왕서방의 집에서 남편이 옮겼다. 그리고 복녀의 남편, 왕 서방, 한방 의사는 둘러 않아 서로 돈을 주고받고 복녀는 뇌출혈로 죽었다는 진단서와 함께 공동묘지로 실려 갔다. 이 씁쓸한 이야기는 김동인의 단편 “감자” 줄거리다.
단편 ‘감자’에서 복녀는 자신의 타락이 가난 때문이라고 핑계한다. 그런데 복녀 시대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복녀처럼 살지 않았다. 가난을 핑계로 탈선을 핑계 대며 자신을 합리화 했던 복녀의 말로는 비참했다.
최근 위정자들이 계속 핑계 대는 것을 보니 씁쓸하다. 핑계 대는 사람은 늘 핑계거리를 찾는다. 서울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초유의 사태에도 이상한 핑계가 등장했고, 아파트 값의 폭등에도 희한한 핑계들이 등장했고, 아들의 이상한 군생활에도 핑계가 등장한다. 근자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책임지고 사과하거나 사퇴하는 꼴을 보지 못했다. 핑계 대는 사람도 핑계에 쉽게 설득당하는 대중도 안타깝고 안쓰럽다.
핑계는 잘 꾸며진 거짓말이다. 그러므로 핑계 대는 사람들은 영리하다. 그 영리한 거짓말에 잠시 대중이 속기도 하고 여론도 설득당하기도 하지만 거짓말은 거짓말이고, 핑계는 핑계일 뿐이다. 곧 진실이 드러난다. 핑계 대는 사람들이 복녀처럼 잠시 승승장구해도 복녀가 망하듯 초라하게 무너지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2020-08-31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