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수의 아들 한 생원은 땅 문제로 평생을 끓었다. 아버지 시대에 장만했던 땅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빼앗기다시피 잃어버렸다. 아버지 한태수는 부지런해서 열서너 마지기와 일곱 마지기의 논이 있었다. 그런데 피와 땀이 어린 그 논을 겨우 5년 만에 고을 군수에게 빼앗겼다. 동학(東學)의 잔당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쓰고 논을 빼앗기고 말았다. 잡혀간 후 사흘 만에 열서너 마지기의 논을 바치고 겨우 풀려났다.
일제 강점 바로 이듬해, 한 생원은 나머지 논 일곱 마지기도 팔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다. 마침 일본사람 요시카와가 인근의 땅을 시세보다 갑절이나 더 주고 산다기에, 그 돈이면 빚도 갚고 남은 돈으로 다른 논을 사리라 생각하고 모두 팔았다. 그러나 이미 부근 땅값이 올라가서 때문에 빚을 갚고 나니 남은 돈으로 다른 논을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로부터 36년이 흐르고 해방이 되었다. 망한 일본은 도망가기 바빴고 일본사람들도 맘이 바빠서 재산을 그대로 내어놓고 달아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한 생원은 어깨가 잔뜩 우쭐하였다. 요시카에게 팔았던 자기 땅은 당연히 자기 차지일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옛 땅을 도로 찾을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기분 좋게 술 한 하고, 자신이 논을 다시 찾을 것이라고 큰소리치다가 땅을 보러 간다.
기대에 부푼 맘으로 가던 한 생원은 자신이 요시카와에게 팔아넘긴 산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것을 알게 된다. 요시카와 농장 관리인 강태식이 땅을 팔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망해서 일본 주인이 도망갔으니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던 한 생원의 계산은 완전히 어긋나 버렸다. 두고 간 재산을 차지하려면 돈을 내고 사야 했다.
한 생원은 그럴 재력도 없거니와 도대체 왜정 이전(前)의 임자가 엄연히 있는데 그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판다는 것이 한 생원이 보기에는 불합리한 처사였다. 한 생원은 리장에게 달려갔다. 리장의 설명을 들은 '한 생원'은, "독립됐다고 했을 때, 내 만세 안 부르기 잘 했지."라고 중얼거린다. 해방의 기쁨도 잃은 것이다. 이상은 거칠게 간추린 채만식의 소설 '논'의 줄거리다.
한 생원은 나라가 해방되는 거대한 기쁨과 감격을 논 몇 마지기 때문에 잃어버렸다. 시시한 이유로 해방에 기뻐하지 못한 생원만의 일일까? 단언컨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소아적 유불리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한 사람도 있었고, 해방기에 자신의 재산을 잃고 분노하다가 해방의 기쁨을 놓친 사람들도 한둘이 아닐 것이다.
코로나 유행으로 예수님 오심의 기쁨과 감사를 잃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성탄의 기쁨이나 감사를 잃지 않아야 한다. 성탄의 기쁨은 코로나의 아픔보다 훨씬 더 강하고 크다. 코로나가 아무리 강해도 성탄이 주는 희망과 생명을 막지 못한다.
어두움이 짙을수록 빛이 더 선명하듯 힘들고 어려운 코로나의 날들에 예수님의 사랑과 희망이 더 찬란하게 빛나기를 기도한다.
2020-12-07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