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베토벤의 삶은 그야말로 질곡의 연속이었다. 소년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시작으로 끊이지 않는 경제적 빈곤과 조카의 자살 시도, 불행으로 끝난 양아들과의 관계 등, 게다가 청각장애에 신체 장기 어느 것 하나 성치 않은 곳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27살 한참 나이에 직면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는 평생 그의 십자가였다. 음악가에게 청각장애는 사형선고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대화를 하려면 수첩을 이용해야 했으며 오페라 리허설에서 들리지 않아 연주가 엉망이 돼 버린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울증이 생기고 자연 사람들과도 멀리하면서 유형자와도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32살 때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쓴 유서는 그래서 나왔다. 오죽했으면 자신을 부검해 달라는 유언까지 했을까? 그러나 베토벤은 굴하지 않았다. 유서를 쓴 후 자신에게 주어진 음악적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고 마음을 다잡은 베토벤은 절망의 나락에서 주옥같은 불멸의 작품들을 쏟아냈다.
그의 교향곡 2번에서 9번까지 모두 유서를 쓴 이후 작곡되었다. 이 모두가 긍정적 마인드와 신(神)에 대한 찬미로 그 고통을 뛰어 넘어 나온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그 절정이 교향곡 제9번 '합창'이다. 합창 교향곡의 초연이 있던 날 연주가 끝난 후 베토벤은 청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해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한 가수가 그를 부축해 돌려세워서 청중의 엄청난 환호를 보게 하자 비로소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한다.
죽음을 불과 일주일 앞둔 날 슈베르트가 베토벤을 방문했다. 슈베르트는 베토벤과 인근에 살았지만 대 작곡가를 만날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지인들의 주선으로 죽기 직전에야 어렵게 만나게 된 것이었다. 슈베르트로부터 악보를 받아 본 베토벤은 크게 감탄하고는 '자네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자네는 분명 세상을 빛낼 훌륭한 음악가가 될 것이네. 부디 용기를 잃지 말게'라고 했다 한다. 그러자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초최한 모습에 괴로워 방을 뛰쳐나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베토벤이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여 합창 교향곡을 완성한 건 53살 때이지만 그 구상을 시작한 것은 이미 20살 전부터였다 하니 30여 년이란 긴 세월 시련 속에서 달구어 낸 인류애의 희망곡인 셈이다.
신(神)을 대신해 사랑과 평화 그리고 화합의 복음을 전하려는 베토벤의 메시지 때문이다. 전 세계인이 매년 이맘때면 빠짐없이 합창 교향곡 연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유다.
지난 17일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었다. 세계 음악계는 이를 위해 대대적인 공연과 이벤트를 준비했지만 코로나 19 창궐로 모두 취소되면서 올 연말에는 그의 9번 합창 교향곡 실황 연주를 접할 수 없게 됐다.
베토벤의 해, 베토벤의 달에 '합창' 교향곡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지금이 '합창'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읽어 내야 할 때라 본다.
'환희의 송가' 중 이런 가사가 나온다. '그대의 힘은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은 자들을 다시 결합시키고/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만인이여 용기 있게 인내하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코로나 위기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모두 한층 더 조심하고 힘내자.
2020-12-22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