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는 유명한 말 두 마리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는 관우의 애마로 관우가 죽자 따라 죽었다는 '적토마'이고 또 다른 하나는 눈 아래 눈물주머니와 이마의 흰 점이 주인에게 해를 입힌다는 '적로마(的盧馬)'다.
이 때문에 형주 자사 유표는 자신에게 몸을 의탁해 있던 유비에게 '적로마'를 주었다. 유비는 주위 만류를 듣지 않고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유비는 유표 부하 장수에게 쫓겨 달아나다가 그만 물살이 거센 협곡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자 적로마는 물속에 뛰어들어 헤엄쳐 협곡을 무사히 건너 유비의 목숨을 구했다.
이처럼 말의 헤엄치는 힘과 용기는 뛰어나다. 하지만 홍수가 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홍수가 나 물에 빠지면 말은 제 실력을 믿고 물살을 거슬러 가다가 지쳐 익사한다. 반면에 헤엄이 서툰 소는 물살에 몸을 맡겨 떠내려가다가 물가에 닿아 목숨을 구하는 거다. '말은 죽지만 소는 살아난다'는 이른바 '우생마사(牛生馬死)'다.
이렇듯 소는 걸음걸이가 느려 우보라고 놀림도 받지만 호기를 부리지 않는 겸손과 인내 그리고 순리에 따를 줄 안다. 소(牛)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사람과 같은 대우를 받았던 동물이다. 단순한 가축이 아닌 '식구'로 여겼던 거다. 재(財)물이였던 동시에 노역(勞役)을 대신해 주는 소가 그만큼 소중했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도 한때는 가난한 농촌의 부모가 자신의 못 배운 한을 자식이 풀어주기를 바라며 재산 목록 1호인 소를 팔아 등록금을 마련한다 해서 '우골탑(牛骨塔)'이란 말이 '상아탑(象牙塔)'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 대상이 소였다고 하니 그 소의 가치나 그 비중을 짐작할 수가 있다.
더 나아가 소 꿈은 재수(財數)가 좋은 길몽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소는 먹거리로도 최고요 머리 뿔부터 발끝까지 하품 외에는 버릴 게 없다고 하는 게 빈말이 아니다.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신축년 흰 소의 해다.
특히 흰 소는 화를 복으로 바꾸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중국 춘추 말기 송나라 사람 중에 한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집에서 기르는 검은 소가 흰 송아지를 낳자 그 까닭이 궁금해 공자를 찾아갔다. 공자는 '길조이니 흰 송아지를 하늘에 바치라'고 했다. 하지만 1년 후 농부의 아버지는 눈이 멀게 되었고 검은 소는 또 다시 흰 송아지를 낳았다. 농부가 다시 공자에게 물었더니 같은 대답을 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이번엔 농부까지 눈이 멀었다.
얼마 후, 초(楚)나라가 송나라를 침공해 송나라 젊은이 대부분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농부 부자는 눈이 멀어 징발되지 않았고 전쟁 뒤에 시력이 회복되었다는 얘기다. 해서 후세 사람들은 재앙이 복이 되고 복이 재앙이 되기도 한다는 뜻으로 '흑우생백독(黑牛生白犢)'이라고 한다.
인류는 지난 해 내내 지구촌을 침공하고 물러설 줄 모르는 코로나 19와 싸울 새로운 무기를 준비하고 새해를 맞이했다.
어둠의 긴 터널에서 한 가닥 희망의 불빛을 보이는 백신이다. 백신(vaccine)이라는 말 역시 '암소'를 뜻하는 라틴어 'vacca'에서 왔다. 그러니 올해는 복을 부르는 흰 소에 힘입어 백신을 무기 삼아 역병을 물리치고 우리의 일상을 재탈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보만리(牛步萬里)' 소 걸음으로 만리를 간다는 뜻으로 비록 느리지만 결국엔 뜻을 이룬다고 하지 않던가?
모두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1-01-05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