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 가면 꼭 방문하는 곳이 있다. 2차 대전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이다. 몇 번 방문했지만 갈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워싱턴 방문 때마다 안내해 주었던 Guy Jarret 대령은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유대인의 고통과 역사의식을 소개해준다. 들을 때마다 새롭고 흥미롭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전 세계 17곳에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세워진 추모 박물관이 가장 크고 유명하다. 정식명칭은 야드바셈 홀로코스트박물관이다. '야드 바셈'이란 희생자들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성지 순례를 갔다가 야드 바셈을 방문했었다. 야드 바셈의 가장 인상적인 추모관은 어린이기념관이었다. 학살된 6백만 명의 유대인 중 1백50만 명이 어린이들이다. 어린이기념관에 들어서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촛불만 켜 놓은 채 죽어간 어린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 국적이 천천히 읽혀진다. 아이들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가슴이 찌릿했었다. 이스라엘에서 남은 일정을 보내는 내내 자문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이런 역사를 가르치고 있나? 우리는 아픈 역사를 기억하려고 노력하는가?'
왜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세계 곳곳에 세웠을까? 유대인은 자신들의 아픈 역사를 후손들이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맘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 그 중에 가장 위대한 점이 그들의 역사의식이다. 자신들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역사의 교훈을 그들의 현재의 삶에 실천하고 내일의 주역 후손들에게 가르친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 인물이나 과거 사건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주는 교훈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가 토인비는 "역사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않기에 슬픈 역사가 반복된다. 역사가 주는 엄중한 교훈이다.
살아 있는 존재는 역사를 만들어 간다. 오늘은 어제의 열매이고, 내일은 오늘의 열매다. 어제 심은 것을 오늘 거두고 오늘 뿌린 것을 내일 거두게 된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지금 내일에 거둘 씨앗을 뿌리고 있다. 개인의 인생이나 인류나 국가의 역사에 공히 적용되는 진리다.
얼마 전 서울과 부산 시장 선출을 위한 선거가 있었다. 거대 여당은 참패를 당하면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쟁력 있는 후보도 없었던 야당은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그런데 양측 모두 자만하지 않겠다며 몸을 낮춘다. 그러나 그들의 자성과 몸을 낮춘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성숙한 사람은 자성하는 사람이다. 성숙한 사회, 성숙한 국가와 민족은 역사를 성찰한다. 자성과 성찰은 긍정적 변화로 완성된다. 아무리 자성하고 성찰한다고 해도 긍정적 변화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나라를 이끌어 보겠다는 선량들이 내뱉는 자성의 목소리가 반갑게 믿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자성이 더 나은 내일의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1-04-12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