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흑인 트롬본 연주자 히크맨은 어느 날 신(神)의 소명을 받고 목사가 된다. 그리고 어린 백인 고아를 친자식처럼 키운다. 백인으로 태어났으나 양아버지의 돌봄으로 흑인문화에 익숙해진 선레이더는 어려서부터 설교도 잘하고 흑인들에게도 인기가 좋아 '블리스(Bliss), 축복'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흑인인가, 백인인가'로 자신의 정체성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선레이더는 결국 양아버지를 떠난다.
말재주가 뛰어난 그는 한때 영화제작에도 관여한 후 정계로 나아가더니 상원의원이 된다. 하지만 자신의 출생과 성장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철저한 백인우월주의자로 변신한다. 이 후 인종차별주의자로 악명을 떨치면서 어려서 흑인들이 붙여준 '블리스(축복)' 대신 흑인사회로부터 '저주'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는 결국 흑인으로부터 총격을 받고 쓰러져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 죽음을 앞둔 그는 양아버지 히크만 목사를 찾는다. 죽음의 병상에서 그는 어린 시절의 흑인 릫블리스릮로 되돌아간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을 떠 올리며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참회의 눈물을 흘린 그는 양아버지 목사의 품에 안겨 눈을 감는다. 랄프 엘리슨의 소설 '준틴스(Juneteenth)' 이야기다.
2차대전 이후 미국 문단에서 주목을 크게 받았던 흑인 작가 랄프 엘리슨은 인종갈등의 문제를 수려한 문체로 엮어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준틴스(Juneteenth)'는 6월의 'June'과 19일을 뜻하는 'Nineteenth'의 합성어다.
1863년 1월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선언을 한 후 1865년 6월 19일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북부군 고든 그레인저 장군이 텍사스의 항구도시 갤버스턴에 상륙해 텍사스 주의 연방 복귀와 함께 노예들에게 자유를 선언하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당시 4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노예 중 이날 25만 명이 해방되었다.
이 후 텍사스 주의 흑인들은 이를 기념해 매년 6월19일이 되면 바베큐 파티를 열었고, 이는 차츰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다가1980년 텍사스주를 시작으로 47개 주와 워싱턴DC가 공휴일 또는 기념일로 지정했다.
헌데 마침내 6월 19일이 흑인만이 아니라 모든 미국 시민의 기념일이 됐다. 지난 17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미국의 11번째 연방 공휴일이 된 거다. 7월 4일이 미국 독립기념일이라면 6월 19일은 흑인에게 자유와 해방의 날이자 독립기념일인 셈이다. 무려 156년만에 '흑백 평등'으로의 여정에 세워진 또 하나의 이정표다.
흑인의 지성 윌리엄 뒤 보아는 인간의 삶에는 4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살아 움직이고, 배워 알고, 사랑하며, 꿈을 갖는 것'. 그러나 노예나 압박 받는 자에게는 이 모든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오로지 3개의 선택권만이 주어졌을 뿐이다. '복종하느냐, 싸우느냐, 아니면 도망치느냐'. 허나 이 모두 역시 자유와 평등을 찾기 위해서는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부디 이번에 세워진 이정표를 계기로 더 나아가 진정한 전 인종의 평등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2021-06-22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