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 교회는 탁월한 덕행이나 순교로 신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들을 ‘하느님의 종’ 그리고 ‘복자’ 등의 절차를 거쳐 ‘성인’으로 추대한다. 신앙의 영웅으로 공경할 만한 인물을 복자(福者)로 승인하는 절차를 시복(諡福 )이라 하고 이 후 전문가들의 조사와 재판을 통하여 초자연적인 기적을 두 번 이상 행했다는 것이 인정되면 성인으로 추대되는데 이를 릫시성(諡聖)릮이라한다.
한국 천주교는 세계 천주교 역사에서 선교사를 통하지 않고 자생적으로 신앙 공동체가 생긴 유일한 사례였다. 하지만 정조 15년 1791년 신해박해를 시작으로 5번의 박해를 통해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이뤄지면서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죽음을 맞았다.
이에 한국 천주교가 순교와 진료기록의 미비 등으로 기적을 증빙할 자료를 구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교황청에 제출한 ‘기적심사관면청원’이 받아들여지면서 조선시대 최초의 천주교 신부인 김대건을 포함한 천주교 순교자 103인이 성인(聖人)으로 승인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으로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들 103위에 대한 시성식을 집전하였다. 이로써 한국 천주교는 현재 103위 성인과 123위 복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7일 미 가톨릭 주교회의가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의 주역이었던 레너드 라루 선장에 대한 ‘복자’ 시성을 위한 국내 절차를 밟기로 의결했다.
1950년 12월 23일 남하하는 중공군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 10만4천명은 모두 흥남부두로 모여들었다. 정박 중인 190 여척의 군함들을 타고 9만 여 명은 남쪽으로 내려 갈 수 있었지만 남은 14000명이 문제였다. 남아 있는 배라고는 단 한 척이었는데 그나마 군함이 아닌 일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였다. 탑승 정원은 불과 60명.
피난민들의 절규와 눈물에 출항 명령을 내리지 못하던 선장 레오나드 라루는 ‘기적’을 바라는 기도를 하고, 지휘관 군단장은 일부 피난민을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태워도 좋다는 허가를 내렸다. 그러나 라루 선장은 25만 톤에 달하는 군수물자와 식량 그리고 물을 모두 버리고 일부가 아닌14000 명 전부를 태웠다.
3일간의 항해를 거쳐 1950년 12월 25일 거제항에 입항했다. 항해 동안 태어난 5명의 아이를 포함해 한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무사히 살아 남았다. 역사가들은 인류 문명사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기적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라루 선장은 이 항해 후 선장을 그만두고 뉴저지에 있는 성 베네딕도회 뉴튼수도원에 입회해 ‘마리너스’라는 수도명으로 47년간 수도원 밖을 나가지 않은 채 수도생활을 하다가 2001년 10월 8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2019년 라루 선장이 소속됐던 교구가 그를 릫하느님의 종’으로 선포한 후 이번에 미 주교회의의 의결에 따라 다음 단계인 ‘복자’를 위한 절차를 진행하게 된 거다. 이에 따라앞으로 교황은 추기경과 논의해 ‘복자’ 시복을 결정하게 된다.
헌데 한가지 아쉬운 것은 14,000명의 소중한 목숨을 구해 전 세계에 감동을 안겨 준 ‘메러디스 빅토리 호’가 1993년 중국에 팔려가 고철로 해체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영구보존을 통해 구원과 평화 증진 그리고 안보 교육의 장으로 남았었더라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2021-08-03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