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안토니오 르블랑입니다. 나는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닙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후 뉴올리언스에서 타투 아티스트로 일하던 청년 안토니오의 호소다. 그에게는 자신을 믿어주는 아내 '캐시'와 사랑스런 딸 '제시'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가 전부다.
헌데 어느 날 억울한 상황에 휘말려 경찰에 붙잡힌 후 영문도 모른 채 이민단속국으로 넘겨지고 그때서야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을 난생 처음 알게된 그는 강제추방 위기에 처하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저스틴 전 감독이 각본을 쓰고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푸른 호수(원제 Blue Bayou)'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온 그는 "미국에서 아시안 아메리칸으로 살아가면서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 미국이라는 토양 안에서 우리는 삶의 뿌리를 어디에 내리고 있는 것인가?' 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그는 '미국 시민권자들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아이들을 입양했는데 서류 하나 빠졌다고 '너는 미국인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일지 생각했어요. 모국에서 버려져 미국으로 보내졌는데 또 다시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엄청난 상처가 될 거로 생각했죠'. 해서 '영화로 이 문제를 알리고 싶었다'며 '입양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게 이 시대의 정의라고 느꼈다'고 했다.
이처럼 적지 않은 미국 입양인들은 무국적 상태를 모른 채 성인이 돼 대학에 진학하거나 운전면허 취득 과정에서 무국적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입양한 부모가 자녀를 위해 시민권을 따로 신청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민권을 받지 못한 국제 입양아 문제는 미국에서도 오랜 논란거리였는데 인권 단체들의 캠페인으로 2000년 외국 태생 입양인에게 시민권을 자동 부여하는 '아동 시민권법'이 마련됐다. 하지만 소급 적용이 안 돼 여전히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추방 위기에 놓인 입양인이 수만 명에 달한다.
이 중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아이를 입양 보내는 나라로 아이들 대부분은 양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미국인으로 성장했지만, 시민권조차 획득하지 못하고 방치된 채 성인이 된 그 수가 18,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경계인으로서 불안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성인이 된 후 국적이 없어 불법 체류 신분이 되고, 이후 크고 작은 범법 행위에 연루돼 발견되면 한국으로 추방 당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한국으로 돌아간 해외 입양인들은 언어 장벽은 물론, 문화적 차이, 재정적인 어려움, 사회적인 낙인 등으로 취업이 어렵고 정신 건강에도 어려움을 겪으며 고립되고 이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사례도 적지않다.
여기에는 한국정부의 책임도 있다. 입양을 보낸 한국의 기관들이 미국에 도착한 아이들이 시민권을 취득했는지 확인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스틴 전 감독은 법적인 허점과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이 작품을 통해 '푸른 호수'가 이민자 문제이기 앞서 인권의 문제이고 가족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라며 '해외 입양인 시민권자법이 꼭 통과되기를 기대한다'고 피력했다. 내용은 다르지만 한국계 미국인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제2의 미나리'다.
2021-10-26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