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알래스카에서 마리아 존스라는 원주민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후 ‘아야크’라고 하는 언어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그가 그 말을 아는 마지막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언어가 한 민족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모국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이기 이전에 한 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과 함께 이어져 가는 생명의 호흡과 같은 것이다.
이 세상의 언어는 약 3000 가지인데 이 중 쓸 수 있는 언어는 100 여 종 밖에 안 되고 그 나머지는 말만 있고 글이 없으니 미래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해서 옥스퍼드대 교수 수전 로메인 박사가 말했듯 ‘언어의 사멸은 존재의 사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언어가 있는 민족은 자신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가지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일제는 조선을 강제병합하고 우리 민족의 얼을 말살하기 위해 말과 글을 탄압했다. 하지만 잘 지켜낸 우리의 말과 글은 오늘날 IT세계를 맞아 그 빛을 더 발하고 있다. 한때 세계최강이었던 영국에게 800년 가까이 식민지배되었던 아일랜드도 마찬가지였다. 민족어이자 모국어인 아일랜드어(게일어)는 학교와 모든 문서에서 배제되는 등 무참히 억압당했다. 그러다 보니 작가들은 게일어가 아닌 식민 제국 언어인 영어로 글을 써야 했고, 자국 문학이 아닌 영국 문학을 통해서 세계에 소개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에 저항해 아일랜드 독립과 민족운동에 헌신한 많은 이들 중에서 아일랜드 작가와 지식인들이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문예부흥을 펼쳐 민족정신을 고취하려고 애쓴 운동 중심에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있었다. 한국의 화장품으로 잘 알려진 이니스프리. 이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의 대표적인 시 ‘이니스프리로 가련다’에서 따온 상품명이다.
그는 아일랜드가 독립한 후 상원의원을 지내면서도 시를 계속 썼으며 58세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는 한편 숱한 삶의 질곡에서도 스무 살이나 어린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나 T.S. 엘리엇과도 깊이 교류하며 작품을 논했을 정도로 다방면의 훌륭한 친구들을 만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인간의 영광이 어디서 시작하고 끝나는지 생각해보라. 나의 영광은 훌륭한 친구들을 가진 데 있었다’고 말한 그의 명구가 이러한 데서 나왔을 것이다.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만찬에서 윤대통령이 인용해 말한 이 구절은 예전에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하며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에게 자유메달을 수여할 때도 읊은 바 있다. 그때 바이든은 눈시울을 붉히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평소 아일랜드계 혈통임을 강조해온 바이든이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의 구절을 선물받고 느꼈을 심정이 어땠을까?
널리 회자되어 온 ‘조선은 동양의 아일랜드’라는 말처럼 우리와 아일랜드는 닮은점이 너무도 많다. 감성적인 국민성도 그렇고 이웃한 제국의 식민지배를 민족적 자존심으로 버텨냈다는 점 등이다. 해서 닮은꼴의 ‘훌륭한 친구’로써 ‘함께 갑시다’는 건배사로 화답한 것이 아닐까?
말과 글, 언어는 그 민족의 혼이다. 알퐁스 도데가 쓴 독일 치하의 프랑스 알사스-로렌 지방 한 학교의 프랑스어 ‘마지막 수업’에서 아멜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말을 잃지 마세요. 그러면 감옥에 있더라도 열쇠를 갖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자유에 대한 열쇠, 상대의 마음을 여는 열쇠, 모든 진실로 가는 열쇠, 그것이 말과 글의 힘이다.
2022-05-31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