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은 설레임으로 부푼 가슴을 안고 모여드는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만남과 떠남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리곤 각자들의 서로 다른 사연으로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흥미로운 볼거리가 연출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2009년 영국 히드로 공항은 작가이자 철학가인 알랭 드 보통에게 공항에서 일주일을 머물면서 책을 쓰도록 집필을 의뢰한 적이 있다. 공항을 새롭게 하기위한 정보와 텍스트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공항 D구역과 E구역 사이의 출발대합실에 책상이 마련됐고 그는 그곳에서 전 세계에서 모여든 여행자들은 물론 수하물 담당자부터 비행기 조종사 등 공항에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여행과 우리의 삶 그리고 생각에 대해 매우 깊으면서도 폭넓고 아름다운 글을 썼다.
이와 함께 라운지에서 이별하는 연인들의 모습, 부유한 사업가들과 대비되는 청소부와의 이질감 등 그의 눈에 비친 다양한 공항의 풍경 또한 놓치지 않고 많은 철학서와 소설, 시 등의 문학작품도 인용해가며 그만의 놀라운 통찰력에 위트를 가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항에서 일주일’이라는 책이다.
하지만 이 공항 읽기에서 그의 눈에 비친 풍경은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다. 공항은 결코 안락한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강철과 콘크리트 등으로 된 거대한 구조물에 온갖 IT 첨단장비 등이 동원되어 항시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위험에 대한 보안이 필요한 이 공간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통제와 감시가 24시간 내내 이루어진다.
특히 9-11테러 이후 공항이 예전처럼 ‘머물 수 있어 좋았던’ 낭만을 잃고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도 한몫을 더했을 것이다. 해서 그는 이 곳을 ‘우아함과 논리가 지배하는 훌륭하고 매혹적인 피난처’ 같은 곳이라 칭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터미널’에 이런 사정이 잘 보여준다. 미국 여행길에 올랐다가 자신의 고국이 쿠테타로 전복되자 졸지에 국적불명 상태가 되어 미국 입국이 거부당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제 미국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고국으로 귀환할 수도 없어 JFK 국제공항에 갇히는 처지가 되면서 9개월 동안 공항에 머물러 지내며 겪는 이야기다. 그는 영어를 하지 못해 곤란한 처지에 빠지는가 하면 공항 직원과 친해지고 우연한 기회로 여승무원과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결국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나 집에 가요’하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헌데 이 영화는 이란 출신의 나세리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공항에서 먹고 자고, 책도 읽으며 살아가는 것은 영화와 같아도 나세리의 기구한 현실은 영화와 판이하게 달랐다. 이란에서 왕정 반대 시위를 하다 1977년 추방당했으며 오랜 기다림 끝에 1986년 유엔을 통해 난민 지위를 부여받았으나 그만 서류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파리 공항에서 발이 묶였다. 결국 프랑스는 추방하고 싶어도 추방할 나라가 없는 무국적자가 된 그를 공항에 방치하고 1988년부터 2006년까지 18년간 샤를 드골 공항에서 그는 노숙하며 살게 되었다.
후에 프랑스와 벨기에가 거주 허가를 내주었지만 나세리는 이를 거부하고 공항에 계속 머물다가 앞서 말한 영화제작사로부터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판권으로 25만 여 달러를 받고 이곳을 떠났다. 하지만 공항을 떠난 후 보호소와 호텔을 전전하다 몇 주 전 공항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77세를 일기로 2주전 사망했다.
무려 34년간이나 공항 안과 밖에서 서성대면서 갈 곳 잃은 삶의 두려움이 그를 영원한 이방인으로 만든 건 아니었을는지. 안식을 빈다.
2022-11-22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