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필립 클레이라는 젊은이가 한국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필립은 태어나자 고아원을 거쳐 입양기관을 통해10살 때 미국 가정에 입양됐지만 양부모가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지 않아 미국 국적이 없었다.
폭행 사건에 연루돼 조사받는 과정에서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필립은 한국으로 추방된 후 5년간 자신에 관한 기록과 부모를 찾으려 애를 썼으나 실패했다. 그러다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그는 노숙자 쉼터와 복지시설, 교도소 등을 전전하던 끝에 생을 마감한 거다.
한국은 필립에게 '고국'이 아닌 '타국'이나 다름없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데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출생에서 입양 그리고 다시 찾은 한국에서 그는 세 번의 버림을 받은 셈이었다. 말하자면 그의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었던 거다.
미국 양부모들이 입양인의 시민권 취득을 위한 절차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한국 정부와 입양기관의 관리부재 시스템 또한 문제다. 이 입양케이스는 한 사례일뿐 이외에도 해외 동포들의 국적과 처우와 관련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수없이 많다.
한국의 해외 이주는 하와이 이민 이전부터 역사가 오래다. 1860년대 대규모 흉년으로 간도와 연해주 등지로 떠난 이주부터 1903년 하와이 이민을 시작으로 멕시코 에네켄 농장 이주, 쿠바의 재이주. 그리고 1910년 일제 식민정책으로 인한 일본 이주에 이어 만주, 사할린으로 내몰린 노동자 징용, 징병과 스탈린에 의한 강제이주, 해방 후 극심한 사회 혼란으로 인한 일본 이주, 한국전쟁 이후 전쟁고아, 해외입양 등에 따른 이주 등이다. 그러다가 1962년 해외이주법 제정에 따른 파독광부, 간호사, 남미농업이민, 월남 파견 등 국외 이주로 이어지다가 1965년 미국 이민법 개정으로 한국인의 미국 이민붐이 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 중에는 특히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으로 할양되었다가 태평양 전쟁 이후 다시 옛 소련으로 넘어간 사할린 땅의 동포들의 피어린 역사 또한 빼놓을수 없다. 일본은 당시 사할린을 석탄 등 천연자원을 전수물자 공급지로 삼으면서 강제징용으로 조선인을 이곳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제2차 대전에서 패하자 일본은 그들을 내버려둔 채 자신들만 본국으로 철수해 버렸다.
이 후 이역만리 동토의 땅으로 끌려 간 그들을 챙겨 주는 나라는 아무데도 없었다. 책임져야 할 일본은 모른체했고 러시아는 자국민이 아니라며 외면했으며 한국 정부는 당시 냉전체제 속에서 소련과 수교를 맺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치하는 와중에 그들은 무국적자와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후에 특별법 제정으로 법적 지원 근거가 마련되는 데까지 무려75년이나 걸렸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재외 국민은 무려 750만 명이다. 이 때문에 20여 년 전부터 이들을 위한 정책과 업무를 담당하는 전담 기구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으나 선거때마다 내걸었던 공약은 허언이 되고 이런 저런 이유로 결실을 보지 못해왔다.
헌데 지난 17일 재외동포청을 신설하는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드디어 오랜 숙원이던 재외동포청 신설이 결실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뿐 그 많은 과제가 풀리기까지엔 상당한 시간을 또 기다려야할 것이다.
2023-03-07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