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하루를 덮고
그 하루가 다른 하루를 녹이고
또 하루가 그걸 채우고 비우고 지우고
어느 하루는 기억이 되고
그 하루는 저 하루를 위로하고 그다음 하루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다독다독
하루의 허락으로 또 하나의 하루를 사는
버릇처럼 지나친 시간
그 끝자락의 아우성
고요한 밤의 어둠이 서늘한 바람을 타고 다가온다
다가와서 삐쭉 얼굴을 내밀고 속삭인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잘 버텼다
하루가 시무룩하게 사라진다
시간은 그렇게 사라졌다가 불쑥, 잊혔다가 불쑥, 뜬금없이 불쑥,
오늘처럼 나타나기도 하며 그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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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이 덧없이 빠르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러고나면 그 이후의 시간은 안타깝게도 더 빠르게 더 빠르게 가속되어진다. 어떻게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몰아부치는 시간의 속도, 그것을 세월이라 부르게 된다. 감사함이나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그냥 코 앞의 날들을 받아드리게 되는 하루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 해의 시작의 시간과 마지막의 시간이 별 차이없이 공존하게 된다.
우리는 멈춤에 대한 불안함이 있다. 그것이 뒤쳐지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마치 잘 산다는 것이 부자로 사는 것이라 오해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시간의 속도를 늦추는 방법은 오직 하나. 나 자신이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가 오롯이 하루의 소중한 호흡으로 되살아나서 존재하도록 기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 하루로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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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철
'시대문학' 시부문 신인상, '쿨투라' 미술평론 신인상 수상. 제 20대 미주문인협회 이사장 역임, 미주문인협회 회장 역임, 월간 문화예술전문지 쿨투라 미주지사장, 문화예술비영리재단 '나무달'대표. 계간지 'K-Writer및 한미문화예술인회 회장. 시집 '꽃의 깃털은 눈이 부시다' '바람은 새의 기억을 읽는다' '슬픔의 모서리는 뭉뚝하다'. 전자시집 '달고 쓰고 맵고 짠' junckim@gmail.com
2023-12-21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