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중국의 강희제니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니 말 할 때의 왕의 치세를 뜻하는 연호(年號)는 기원전 중국에서 유래해 동아시아에서 널리 사용돼 왔다. '황제는 시간도 지배한다'는 사고에 의해 왕의 권위를 높이는 데 쓰였던 거다. 중국은 한무제의 '건원(建元)'으로 시작해 청나라 말 '선통'을 끝으로 폐지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영락(永樂)'으로부터 대한제국의 '광무(光武)'까지 사용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각국에서 연호가 사라진 반면 일본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호를 쓰는 국가로 남았다.
서기 645년36대 고토쿠(孝德) 일왕 때 도입한 이래 1400년 가까이 된다. 지난 22일 일본에서 나루히토 일 왕의 즉위식이 열렸다. 즉위는 지난 5월 1일 이뤄졌으나 일본 내외에 공포하는 의식을 따로 연 것이다. 이에 따라 연호도 예전의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그 동안 일본은 연호를 중국고전에서 따왔다. 헌데 이번 248번째 되는 연호를 처음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요슈(萬葉集)'에서 따왔다고 했다. 첫 '일본식' 연호인 셈이다. '매화의 노래' 서문에 나오는 '초봄 좋은 달이 뜨니 공기 맑고 바람은 부드럽다(初春令月 氣淑風和)'에서 두 글자를 뽑은 거다. '령월(令月)'에서 '아름답고 좋다'는 뜻의 '령(令)'과 '풍화(風和)'에서 '평화롭다'는 '화(和)'를 각각 따온 거다.
하지만 이나마 역시 중국 고전의 영향을 받았다는 학계의 지적이다. 해당 구절이 중국 시문집 '문선(文選)'에 있는 '중춘영월시화기청(仲春令月 時和氣淸)'의 영향이라는 거다. '만요슈'가 8세기 말쯤의 것인 것에 비해 중국의 '문선'은 이보다 앞서 6세기에 편찬되었다.
아무튼 왕이 바뀔 때마다 연호를 바꾸어 해를 세는 것에 많은 불편이 따른다. 연호로는 특정한 해가 서력으로 몇 년인지를 알 수 없거니와 왕이 바뀌는 해는 연호가 두 개가 되니 더욱 혼란스러워서다. 예를 들어 지난5월1일을 기준으로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으므로 올해4월 30일 안에 태어난 아기는 헤이세이 31년생이지만 5월 1일 이후의 아기는 레이와 1년생이 되는 거다. 대개의 일본의 행정서식이 연호만을 쓰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편함에도 일본이 연호를 유지하는 것은 '만세일계( 萬世一系)'라는 '천황제'를 고수하려는 국수주의적 사고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세일계'는 일본 황실의 혈통이 단 한번도 단절된 적이 없이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세계 주요 언론들은 레이와(令和)가 평화와 질서, 조화라고 해석하는 데 반해 아베 총리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문화를 키우자는 것'이라고 엉뚱하게 자의적으로 풀이했는데 이는 평화를 애써 외면하는 듯한 인상이라는 시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가려는 아베 총리의 국수주의적 가치관 때문이다.
이 외에도 레이(令)는 명령, 호령, 칙령처럼 사람을 복종시키는 뜻이 있어 극우보수 아베 답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다시 말해 내적으로는 아베 정권이 국민에 대한 규율과 통제의 강화가 드러나는 느낌이고 대외적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저지른 각종 만행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외면하는 것이나 외교, 인권 문제를 경제보복으로 압박하고 나서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평화와 질서를 말하는 '레이와(令和)' 연호의 정신과 어긋나는 역행인 아이러니다.
2019-10-29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