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4일 74차 유엔 총회가 뉴욕에서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마두로를 '독재자' 니 '쿠바의 꼭두각시'니 하며 맹비난했다. 헌데 그의 연설을 듣지 않고 책 읽기에만 내내 열중해 있던 여성이 있었다. 베네수엘라 유엔 대표부 소속 외교관 다니엘라 로드리게스였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산유 매장량 1위로 남미 최고의 부유국이었지만 대책 없는 경영 실패로 국가 파산위기의 나라가 되었다. 결국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닭 한 마리 사는데도 지폐가 산더미만큼이나 필요한 지경이 되었고 폭력과 데모 그리고 극심한 기아와 질병, 사망으로 절망적인 사람들이 나라를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두로가 현직 대통령임에도 후안 과이도가 자신이 임시 대통령이라고 자처하고 나서고 이를 미국이 인정하고 있어 정치 사회적으로도 불안한 나라다. 이 때문에 올해 유엔 총회에는 마두로 정부 대표단과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 측 대표단이 모두 참석했다. 총회에서 책만 읽던 로드리게스는 마두로 대통령 측 인사였다.
헌데 그녀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듣지 않겠다는 저항의사로 내내 책 읽기에만 집중하던 모습이 생중계와 인터넷에 노출되면서 그가 읽던 책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그것은 베네수엘라 출신 남미의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에 대한 책이었다.
베네수엘라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열여섯 살에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3년 후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스페인에 맞서 조국의 독립뿐만 아니라 남미의 독립을 위해 운동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등 5개국이 줄줄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이 후 이들을 모두 통합해 '대 콜럼비아 공화국'을 꿈꾸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47세 짧은 생을 마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록 민중들 보다는 엘리트에 의한 통치를 따랐기 때문에 독재자냐 아니냐는 논란이 있긴 하지만 그는 해방자로서의 숭고한 명예만을 원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과 부를 탐닉하지 않았던 만큼 추앙받기도 한다. 해서 그의 이름은 볼리비아 국가 명으로부터 여러 남미의 도시들의 공항이나 광장, 거리, 건물 등 다양한 분야에 남아있다.
한 예로 1975년 경제학자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인 호세 아부레우 박사는 범죄를 예방하고 미래를 키워주기 위해 베네수엘라 수도 빈민가 차고에서 10여명의 극빈청소년을 모아 음악팀을 만들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엘 시스테마'의 출발이었다. 35년이 지난 오늘날 엘 시스테마의 규모는엄청나게 성장했다.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인물 중 하나가 LA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고 재단 산하의 많은 오케스트라 중 하나가 바로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다.
로드리게스는 트럼프 연설 후 트위터에 책 표지 사진을 올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인 혐오와 제국주의로 가득 찬 연설로 유엔을 모독하는 동안 나는 바로 이 책을 읽었다. 제국주의에 굴복하지 않는 베네수엘라 국민 만세! '라고 적었다. 국가와 민중을 위해 헌신했던 혁명가를 추모하고 기억하려는 또 다른 방식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2019-11-11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