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어느 날, 고슴도치 몇 마리가 서로 온기를 느끼기 위해 모였다. 그런데 고슴도치들은 가깝게 다가갈수록 몸의 바늘이 서로 찌르기 시작하자 다시 서로 떨어져야만 했다. 하지만 추위가 고슴도치들을 다시 모이게 하고, 또 다시 떨어져야 하는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여러 차례 모임과 헤어짐을 반복한 고슴도치들은 서로가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 것이 최고의 수단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인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필요하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고슴도치들이 모이게 되었지만, 인간의 가시투성이 본성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뿐이었다. 그러자 인간들 또한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찾아낸 것이 예의(禮儀)였다. 그러나 예의가 지켜지지 않으면 서로의 거리를 지키기 위해 서로 거친 말로 비난하게 되었던 거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서로의 온기는 적당히 만족되었으며 서로의 가시에 찔리는 상처도 피할수 있었다. 하지만 남을 찌를 수도, 자신을 찌를 수도 없는 사람은 자신만의 온기로 추운 겨울을 보내게 되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에 나오는 우화다.
이 이야기를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정의하고, 이를 인용해 심리학의 영역에서 활용했다.
그러면 적절한 예의의 거리는 얼마만큼일까? 인류사회학자 에드워드 홀은 인간관계를 4가지 거리로 분류했다. 첫번째는 '친밀한 거리'. 45㎝ 이내다. 가족이나 연인처럼 매우 가까운 관계에서 유지되는 거리다. 두 번째는 '개인적 거리'. 45~120㎝ 정도의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간격으로 보통 친구 사이에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리다.
세 번째는120~360㎝ 정도로 공적인 업무 관계같은 데 필요한 '사회적 거리'다. 그리고 이를 넘어서는 네번째는 '대중적 거리'로 무대 위 공연자와 관객들처럼 떨어져 있는, 그래서 서로 알지 못하는 거리다.
지구촌을 강타한 전염병으로 우리는 지금 세번째 '사회적 거리'를 요구받고 있다. 6 피트 즉, 2m 정도. 그러다 보니 예전과는 사뭇 다른 일상생활이 낯설기도 하지만 마주치는 상대를 바이러스의 숙주로 생각하게 되고 그동안 인간관계를 맺어온 이들마저 부담스러워지는 불편한 심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인지 며칠 전 WHO(세계보건기구)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이라는 말을 '물리적 거리두기(physical distancing)'으로 바꾼다고 밝혔다.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해서 이것이 결코 사회적으로 단절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지구촌 모두는 초연결사회로 여전히 연결돼 있고, 단지 감염예방을 위해 물리적으로만 거리를 두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라는 설명이다.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는 정신건강이 신체건강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맞는 말이다. '사회적 거리'는 신체적 거리일뿐 마음의 거리는 아니다. 힘들 때일수록 마음은 더 가까워져야 할 게다. 감염병 예방수칙을 스스로 누구나 책임있게 지키고 서로 전화나 문자로 안부를 물으며 희망과 용기를 건네는 노력이 이 위기를 하루빨리 극복하는 길이라 믿는다.
2020-03-31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