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지하철역 앞에서 만나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30대 비슷한 또래의 두 사람은 사이좋게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누가 봐도 정다운 친구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발걸음이 조금 어색하기에 가만히 보니까 흰 지팡이를 짚은 시각장애인 이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길을 안내하는 중이었고 그는 장애인을 위해 버스 정류장까지 동행을 하곤 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벌써 수년째 시각장애인의 길잡이를 자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는 한 요양병원에서 방사선사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길잡이로 봉사하던 직장 상사가 퇴직하면서 이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버스정류장까지 횡단보도가 3개나 있고 보도블록을 걷다 보면 움푹 파인 곳도 많았습니다. 물론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눈이나 비가 오면 위험천만할 때가 많았기에 선뜻 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각장애인을 길잡이 하기 전에는 반복되는 출근길이었지만 이제는 하루하루 새로운 아침입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부도 많이 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를 보면서 오히려 삶에 도전을 받는다 합니다. 이제는 서로에게 기쁨과 도움이 되는 친구로 살아가고 있다 하면서 장애인의 길잡이를 하게 된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 바쁜 출근길에 시간을 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인데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손사래를 칩니다. 장애인의 길잡이를 하는 것이 특별히 어려운 일도 아니며 자신이 하는 일을 봉사나 나눔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매일 아침 친구와 함께 출근하면서 길을 걷고 세상을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뿐입니다."
2019-05-16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