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밭에서 농사일에 매진하고 밤에는 문해 (文解)교실에서 글을 배우며 주경야독 하는 초보 시인의 시가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쓴 것처럼 삐뚤어진 글씨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한글을 대하는 마음 그리고 그 시선과 마음을 표현하는 기교가 매우 뛰어나고 따뜻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작가 정을순씨가 80세를 넘기는 나이가 되어서야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한 개의 글자도 읽지 못했던 수많은 세월을 문맹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녀는 배움에 대한 한을 품고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살아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 글을 깨우치고 나서 주변을 바라보니 삶 자체가 감동이요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정을순씨는 이러한 감동과 기쁨을 담아서 시를 쓰게 되었고 이 시는 국가평생 교육 진흥원에서 실시한 대국민 투표에서 최우수상으로 뽑혔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80년의 길고 긴 세월 동안 그녀의 마음에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판에 한글이 하나씩 하나씩 더해지자 아름다운 깨달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 그 누구도 깨닫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그 어떤 아름답고 귀한 것이 들어있는지 자신도 깨닫지 못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팔순을 훌쩍 넘긴 할머니도 글을 깨우쳐서 시를 쓸 수 있었던 사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노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말도 있듯이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룰 배움이란 나이를 초월해서 계속 진행될 인생행진곡과 같습니다. 배움이란 평생 알고 있었던 것을 갑자기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팔순 할머니가 '이제는 숨어도 보인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작은 배움을 통해서 미지의 세계를 넓혀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0-01-02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