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싸구려 초의 심지처럼
영악할 수는 없다
더이상
그 촛불의 그으름처럼
더러울 수는 없다
장님마냥 불안한 어둠을
견딜 수도 없고
촛불의 위태로운 흔들림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순 없다
눈꺼풀 내려앉는 태양의 언덕 아래에서
바램없이 잠드는 들꽃과 함께
아침에 오르게 될 언덕을 기다리며
매장 당하고 싶다
젊은 치기에 써 내려간 시 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 시가 품은 비장한 결기는 여전히 필자에게 남아있는 듯 다시 읽는 마음이 뜨거워진다. 쉬 잠들지 못하고 촛불을 켜놓고 새벽을 지새우며 가졌던 다짐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인간은 고귀하다. 그래서 쉽게 절망해서는 안된다. 시의 제목인 ‘유서초안’이라는 말도, 말미의 ‘매장 당하고 싶다’는 싯구도 결국 수긍해서는 안될 당시의 시린 마음에 전한 온기였으리라 짐작된다.
2024-03-28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