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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석의 동서남북

수필가, 목사

  • 에펠탑을 보는 눈

     프랑스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로 추앙받는 모파상은 에펠탑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그가 파리의 명물인 에펠탑을 사랑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모파상은 에펠탑을 아주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자신이 싫어하는 에펠탑에 있는 식당에서 자주 식사를 했던 것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이 알려진 내용이지만 에펠탑이 건립될 당시 파리의 시민들과 예술가들은 이에 대해서 극심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300m 가까운 고철 덩어리가 파리의 고풍스러운 경관을 해칠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파리의 아름다움을 망치는 프로젝트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프랑스 정부는 20년 후에 탑을 철거하겠다는 조건으로 에펠탑을 건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20년이 지나서 정부가 약속한 대로 에펠탑을 철거하려 하자 이번에는 건립할 때보다 더 큰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 이유는 뜻밖에도 시민들이 매일 에펠탑을 보는 가운데 정이 들고 에펠탑을 통한 환경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면서 이와 같은 일을 적지 않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당장 싫증 난다고 집안에 버려두었던 살림도구가 때로는 유용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이해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소원하게 지냈던 사람이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리워질 때도 있습니다.  모든 만물은 나름대로 아름다움과 쓸모를 지니고 있지만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무슨 일이든 더 인내하면서 지켜볼 수 있어야 하는데 당장 단정하거나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다른 누구보다 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대상이 우리에게 있어서 파리의 에펠탑과 같은 존재가 되어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 '땅을 나누어 주십시오'

     환갑을 넘긴 노인이 인도 전 지역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13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장장 8,000km나 되는 엄청난 거리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이렇게 걸음 하여 찾아간 곳은 인도 전역에 있는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는 이처럼 무작정 부자들을 찾아갔는데 자동차를 타고 가기에도 먼 길을 걸어서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일면식도 없었던 부자들에게 말했습니다.


  • 골프공의 딤플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는 대부분 몸체가 유선형이고 표면이 매끄럽습니다. 비행기의 표면이 울퉁불퉁하다면 더 많은 공기의 저항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을 나는 비행기뿐 아니라 공기 중에 빠른 속도로 움직이도록 만든 것들은 대부분 매끈한 표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멀리 날려 보낼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표면에 울퉁불퉁한 굴곡을 가진 것이 있는데 바로 골프공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골프공에는 '딤플'이라는 울퉁불퉁한 굴곡이 많이 있습니다. 골프의 역사를 살펴보면 초창기에 사용했던 골프공은 그 표면이 매끄러웠다고 합니다.


  • 격려가 주는 힘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때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의 멀리뛰기 선수 '밥 비먼'이 트랙에 올라서 결선 첫 점프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비먼은 결선에 오를 정도의 실력은 되었지만 결코 금메달을 딸 유망주는 아니었습니다. 올림픽 예선에서 두 번이나 무효 판정을 받았던 그의 최고 기록인 8.33미터는 경쟁자들과 비교했을 때 많이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 '코브라' 효과

    과거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인도에서는 코브라에게 물려 죽거나 다치는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코브라를 잡아 오면 보상금을 주곤 했습니다.  독사를 잡는 일이 매우 위험하지만 사람들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너나없이 코브라를 잡아서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이 때 인도 정부는 많은 보상금을 세금으로 처리해야 했지만 이 정책은 일단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 '알프스 소녀 하이디' 이야기 

     한 아이가 슬픔이란 감정을 채 배우기도 전에 부모를 잃었습니다.  이모와 할머니 손에서 길러지다가 다시 깊은 산골에 사는 낯선 할아버지에게 맡겨집니다. 아이는 이와 같이 어느 곳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지만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찾아냅니다.  아픔을 지닌 할아버지의 따뜻한 면을 발견하게 되었고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주었으며 목동 페터와 함께 염소들을 보살피기도 합니다.


  • 어머니의 바느질

     옷을 기워 입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요즈음에도 꼭 기운 옷을 입어야 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 가정의 어머니는 옷이 조금이라도 찢어져 있으면 반드시 꿰매야 직성이 풀린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수술을 겸해 치료받은 백내장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바늘귀에 실을 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는데 다름 아니라 백내장으로 판명이 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백내장은 치료가 가능한 병이라고 합니다. 이에 수술을 받고 회복을 바라보던  어느 날 다시 바늘에 실을 꿰려 하다가 결국 포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약간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봐. 다음 주만 되면 내가 깨끗하게 꿰매 놓을 테니까. 내가 늙어서 이런 게 아니라 병 때문이란다. 나는 노인이 아니란 말이야!"


  • 사람을 알기 원한다면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한 학생이 자신에게 있는 삶의 문제로 고민을 거듭하던 중  철학 교수를 찾아가서 상의를 했습니다. "교수님,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저는 아직도 사람들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정의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면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해야 하는 나이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이자 번역가인 김욱 선생은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소설가를 꿈꾸던 청년 시절 6·25 전쟁을 치르고 북한 의용군에 강제로 끌려가면서 모든 꿈이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의용군에서 탈출한 후 생업을 위해서 기자 생활을 했지만 평생 모은 재산마저 남을 위해 보증을 서면서 날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노숙자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 남의 집 묘지를 돌보는 묘막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 인생의 복기

     바둑기사들이 종종 혼자서 바둑을 두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이를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복기를 하고 있습니다. 복기란 이미 끝난 바둑의 승부를 바둑판 위에서 한 수씩 그대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승패를 떠나 다시 분석함으로서 차후에 있을 승부에서 밑거름을 삼거나 명인의 명승부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복기를 합니다.  그들은 또한 이러한 복기의 과정을 통해서 그만큼 자신의 바둑을 진전시킬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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