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석의 동서남북

수필가, 목사

  • 기러기 아빠의 인생

    예로부터 기러기는 금슬이 좋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좀처럼 헤어지는 일이 없고 장소를 이동할 때에도 흐트러지지 않고 줄을 지어 다닙니다. 그런데 이와는 정 반대로 사용되는 기러기 아빠라는 말이 있습니다.어린 자녀들을 유학 보내면서 가족까지 딸려 보내고 혼자된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외로운 것입니다. 자식을 위한다면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한국 부모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희생이 때로는 엄청난 비극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가족 뒷바라지를 위해서 매년 미화로 $15만을 송금하고 있는 가장도 있는 모양입니다. 무리해서 송금을 하다 보니 본인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도 힘든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장기간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가운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술이나 도박에 손을 대는 가장도 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녀들과 함께 해외로 떠난 아내가 외도를 하면서 가정을 버리는 일도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내가 현지 남자와 살림을 차린 후 이혼할 것을 요구해오는 참담한 일을 경험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식을 해외로 유학시키려는 그 어떠한 명분도 이러한 현실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기러기 아빠는 애초부터 있어서는 안될 대단히 잘못된 사회병리 현상으로서 자녀 교육 때문에 가정의 안녕과 화목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귀한 가정을 담보로 자녀들의 해외유학이라는 모험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반드시 와야 할 유학이라면 가족이 다 같이 오든지 그렇지 않다면 과감하게 단념하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기러기 아빠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무시한 결과 발생한 현상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가정을 잘 지키고 돌볼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일이야말로 그 어떠한 교육보다도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영어교육 이대로 좋은가

    처음 미국에 올 때 비행기 안에서 겪었던 창피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당시 여승무원이 Chicken or beef? 하고 물어보는데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해서 당황을 했던 일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말인데 그 때는 왜 그리도 알아듣지 못했는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이 사건은 영어에 대한 저의 자존심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영자 주간지 '타임'을 끼고 다니지 않으면 팔불출 소리를 듣던 시대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으로서 자존심에 엄청 상처를 입게 되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한국인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기사 하나를 접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영어교육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데 비해서 영어를 제일 못하는 민족에 속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조기교육 바람이 불면서 유치원에서부터 영어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얘기도 듣게 됩니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16년 동안 영어공부를 하게 되고 학교 공부도 모자라서 과외를 시키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열심이라면 비록 유창하지는 않더라도 웬만큼 의사소통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영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서울의 초등학교마다 교실이 썰렁해 지는데 '영어 연수차 외유 중'이라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외유가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경쟁하듯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이 그들의 영어실력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입니다. 이쯤해서 우리의 영어교육에 대한 잘못된 관행에 대해 진지한 깨달음이 있었으면 합니다. 필요이상으로 영어를 배우면서도 왜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공부만 반복하고 있느냐 하는 말입니다. 이제는 영어공부에 대한 자세가 바꿔져야 하는데 더 이상 공부를 위한 공부에 매달려서는 안될 일입니다.


  • 장애물을 뛰어 넘는 사랑

    어느 날 수잔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찾아왔는데 그것은 눈 수술을 받다가 실명을 하게 된 일입니다. 그 후 그녀는 남편의 도움으로 일상생활과 직장 일을 근근이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말합니다. "여보, 내가 계속 이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소. 앞으로 혼자 출근하도록 해요." 그녀는 물론 남편의 이러한 말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남편에게 배신감마저 느끼게 되었던 수잔은 이를 악물고 혼자 출근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루 이틀 지내는 동안 그녀는 몰라보게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자기 혼자서 직장에 출퇴근 하는 일에 더없이 익숙해졌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혼자서 버스를 타는데 운전기사가 무심코 이런 말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좋은 남편을 두어서 좋겠어요. 매일 한결같이 부인을 보살펴 주시네요."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남편은 아내와 같이 버스에 타서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그녀의 출 퇴근 길을 묵묵히 지켜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남편은 아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데에는 적지 않은 장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세상에서 자신들이 기댈 만한 그 누군가를 찾기도 합니다. 수잔의 남편과 같이 자신의 삶에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대상을 찾고자 한다는 말입니다. 때로는 이러한 장애물을 보면서 낙심하기도 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습니다. 인생길에 놓여있는 그 어떠한 장애물도 더는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삶이 힘들어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웃으로 인하여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댈 곳이 있음으로 인하여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도 사실입니다. 장애물을 뛰어넘기가 힘들어도 용기를 가지고 첫발을 내딛어 보세요. 우리가 발을 내딛는 만큼 장애물도 더 이상 가는 길을 가로막을 수가 없습니다.


  • "남보다 뛰어나려 하지 말고..."

    아인슈타인 하면 천재를 떠올리지만 그의 삶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는 여덟 살 때까지 열등아로서 다른 아이들과 비교가 되어 놀림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이 15세 때 뉴턴이나 스피노자, 데카르트 같은 철학자들의 책들을 독파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재능을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를 눈치 채고 개성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녀는 남들과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주변사람들과 달리 아들의 개성을 살려주는 일에 힘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로부터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이에 자녀의 개성을 발견함은 물론 그것을 잘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 부모로서 할 일입니다. 유대인들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보면 이와 같은 말이 있습니다. "현제의 개성을 비교하면 모두 살리지만 형제의 머리를 비교하면 모두 죽인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자녀들을 교육 시키는데 있어서 자녀들의 지능이 아닌 개성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오늘과 같은 경쟁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머리만 좋을 것이 아니라 그들을 리드할 수 있는 개성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이에 그들은 "남보다 뛰어나려 하지 말고 남과 다르게 되라"고 가르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욕심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이와 같은 욕심에 내몰려 심신으로 병들어 있는 자녀들도 적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많은 때 부모들의 욕심에 희생양이 되어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경쟁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대부분은 인생에서 실패의 쓴맛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개성을 세워주는 일에 힘쓴다면 스스로 선택한 인생에 대해 만족과 성취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경쟁이 아닌 선택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부모들의 생각을 조금만 바꿀 수 있다면 자녀들의 인생이 더없이 풍요로워지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눈물이 보약입니다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보면 항상 웃음이 가득하고 환하게 피어 있습니다. 웃음이란 그리스어로 Hele인데 건강 (Health)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웃음을 건강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웃음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노만 카슨스씨는 나이 50에 척수염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는 잠언의 말씀을 치유의 방법으로 깨닫게 됩니다. 마음의 즐거움을 회복하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웃으며 지내는 가운데 병에서 치유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도 웃음 못지않게 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눈물을 통해서 자신의 가장 정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눈물을 보임으로써 죄에서 회개하고 사함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눈물을 통해서 연약함을 보일수록 그분의 관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에 보면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하는 교훈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우는 사람에게 웃을 수 있는 축복이 따른다는 의미로서 우리가 찾을 진정한 웃음은 눈물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눈물은 삶을 회복시키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보약입니다. 주님은 많은 때 눈물로 사역을 이루셨던 사실을 생각해 봅니다. 죽은 나사로를 보시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에 우셨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심한 통곡과 함께 눈물을 보이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에 주의 일을 감당하는 사역자는 특별히 눈물의 의미를 깊이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애통함으로 자신을 무너뜨리는 눈물이 없이는 천국을 세워나갈 수 없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수고가 없이는 삶에 회복이나 치유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애통함으로 눈물을 보이는 사람이 이 땅에서의 삶에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마다 기쁨의 단을 거둘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꿈을 가진 인생

    요사이는 웬만한 기업이나 관공서를 보더라도 Vision Statement라는 것이 있어서 '비전'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개인이나 단체를 막론하고 이처럼 내일에 대한 비젼이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일입니다. '비전'은 꿈을 전제로 하는데 꿈은 현재의 조건이나 상황을 뛰어 넘는 내일을 향한 의지이며 거룩한 용기입니다. '비전'은 이러한 꿈과 맞물려서 각오와 결단을 이룸으로서 온전히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꿈은 '비전'을 일으키는 촉매역할을 하며 꿈을 가진 사람만이 '비전'을 품을 수 있습니다. 우리말에 보면 꿈에 대한 수식어들이 꽤나 많이 있습니다. 꿈이라는 말 자체가 긍정적인 말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에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꿈 좀 깨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꿈자리가 사납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질시하고 경계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을 인정해주기보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매도하려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에게 그랬던 것처럼 꿈을 가진 사람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꿈을 꾸지 못하는 사람에게 내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내일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을 때 내일의 삶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내일을 향한 꿈에 부풀어있는 사람은 오늘의 삶 때문에 실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요사이 많은 청소년들이 꿈을 잃은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언젠가 20대 나이의 한 가수가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접한 일이 있습니다. 그녀가 꿈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인생을 이런 식으로 마감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망하지만 꿈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통해서 내일의 삶을 펼쳐나갈 수 있으며 인생은 오늘의 삶에만 묶어둘 수 없는 엄청난 가치가 있습니다.


  • 고난의 비밀을 묻는 이에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본의 여류 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13년간 병석에서 지내는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23세에 폐결핵을 앓게 되었고 7년 후에는 척추병까지 얻어서 혼자서는 화장실도 갈 수 없는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이때 그녀의 어머니는 고통으로 서서히 죽어가던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야꼬야, 터널에 들어가면 누구든지 별 수 없는 거다. 그러나 긴 터널도 끝이 있는 법이란다." 아야꼬는 어머니의 이 말씀에 큰 위로를 얻고 이처럼 고백했습니다. "보이는 세계는 잠깐입니다. 인생의 시련과 고난은 결코 길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역경과 고통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라도 징계를 받기 싫어하는 아들은 참 아들이 아닙니다. 성경은 징계를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참 아들이 아니요 사생아라고 말합니다. 스승에게 징계를 받기 싫다고 경찰에 스승을 고발하는 학생도 있는 모양인데 이러한 사람은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참 아들은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회초리를 맞으면서도 부모님이 한없이 고마워야 합니다. 참 아들은 고난 중에도 그 안에 숨겨진 부모님의 사랑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벌 받고 회초리로 맞으면서도 그를 통한 진정한 사랑을 알기에 참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난은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허락하시는 사랑의 징표입니다. 이제 우리는 고난도 달게 견뎌야 하는데 매를 맞으면서도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창조주가 주시는 고난을 겪으면서 '그래도 내가 세상 가운데 버려진 사생아가 아니구나!'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분이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회초리를 드셔도 늘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회초리 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영원하고 변함이 없는 사랑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 무엇이 문제였나요?

    얼마전 하버드와 스탠포드에 동시 입학 허가를 받았다는 한인 학생에 대한 기사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버지니아주 토머스 제퍼슨 과학고교 학생인 주인공에 대한 이러한 이야기는 엄청난 파문이 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처음 소개된 뒤 한국의 언론사들이 앞 다투어 보도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용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학생의 부모가 사과를 하는 해프닝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당사자인 학생이 겪었을 고통 또한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음을 생각해봅니다. 학생이나 부모에게 책임의 소재를 따지기에 앞서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당사자인 학생이 나름대로 실력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왜 이처럼 무리수를 두어야 했을까요? 결국 그녀는 이 사건으로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가장 큰 피해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좀 더 정직하고 성실하게 이끌어줄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이 일이 생기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한번쯤 짚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느 부모에게 있어서나 자녀들이 공부도 잘 하고 삶에 성공하기를 원하는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우리 한인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명문학교니 일류학교니 하는 단어들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있다는 말입니다. 부끄럽지만 자녀들 역시 이러한 부모들의 가치관을 충족시키기 위한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해프닝도 다소 맹목적이라 할 수 있는 부모들의 잘못된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게 되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일류나 명문학교는 아닐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 이해의 미학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내가 잡초 되기 싫으니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 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눈 밖에 나기는 한 순간이더라..." 이는 인생을 노래한 이채 시인의 시 구절로서 세상 모든 것이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우리의 삶이 각자의 이해의 폭과 넓이와 깊이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언젠가 영국 여왕이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십자훈장을 수여하면서 있었던 일입니다. 전쟁으로 손과 발을 잃고 사람들에게 들려 나온 한 병사가 있었는데 여왕은 그에게 훈장을 수여하기 전에 한참동안 뒤로 돌아서서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러자 병사는 여왕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국과 여왕폐하를 위해서라면 다시 한번 제 몸을 바쳐 싸우겠습니다." 병사를 감동시킨 것은 여왕이 수여한 훈장이 아니라 그녀의 눈물이었습니다. 전쟁에 참여했다가 사지를 잃고 돌아온 병사의 마음을 중심으로 위로하려 했던 여왕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위로는 병사가 당했던 아픔과 고통과 상처를 자신의 것처럼 생각하며 이해하려는 마음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해하는 마음은 사람 사이에 관계를 이루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오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일이든지 자신의 처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한다면 문제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때 자신이 그로 하여금 미워할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뒤돌아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자신의 허물을 먼저 깨닫게 됨으로써 스스로 행동을 삼가면 남의 잘못에 대해서 관용을 베풀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남을 이해하려는 아량의 밭이 넓어질 때 사람 사이의 관계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도 끝까지 그의 입장에 서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진정한 교육의 힘

    한국의 성지고등학교 김한태 교장은 이 시대에 찾아보기 드문 교육자의 한 사람입니다. 한번은 전과 13범의 조폭 학생이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주병을 꿰차고 학교에 오는가 하면 동생뻘 되는 학생들을 괴롭히면서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는 일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서 학생들의 불평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고 이를 보다 못한 선생님들은 회의를 열고 그를 퇴학시키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김한태 교장은 그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문제의 학생을 교장실로 불러서 간곡하게 타일렀지만 그는 "당신이 뭔데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교장은 학생을 포기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책임을 맡겨서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특별히 개교기념일에는 그 학생에게 표창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상의 내용은 "이 학생은 앞으로 선행을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상을 주어 표창함"이었습니다. 아들이 상을 받아 오자 학생의 부모들은 감격한 나머지 목이 메였습니다. 그후 조폭 출신 학생은 서서히 변해갔는데 자격증을 세 개나 따고 전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진정한 교육의 힘을 새삼 생각해볼 수 있는 귀한 일화입니다. 만일 그 학생을 교칙에 따라서 엄하게 다스림과 동시에 학교에서 쫓아냈더라면 그의 장래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어쩌면 전과 14범, 15범을 넘어서 사회에 발붙일 수도 없는 영원한 전과자로 전락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김한태 선생님의 헌신적인 교육에 힘입어서 한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엉터리 같은 인생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릴 때 살려낼 수 있습니다. 진정한 교육의 힘은 끝까지 참고 인내함으로 기다려주는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사람은 스승의 기다림을 통해서 바른 길을 찾게 되고 자신을 믿어주는 스승으로 인해서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