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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석의 동서남북

수필가, 목사

  • '무병장수의  비결'

     평생을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한 의사가 많은 사람들의 슬픔 속에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인품도 훌륭했지만 엄청난 의술로 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했기에 그의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은 더 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무병장수의 비결'이라는 제목의 봉인된 책을 한 권 발견했습니다.


  • 행복을 그리는 화가

     프랑스의 르누아르는 19세기 후반 미술사의 격변기를 살았던 화가 가운데 비극적인 주제를 그리지 않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는 화려한 빛과 색채의 조합을 통해서 무려 5,000 점이 넘는 주옥과 같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어두운 삶을 그려내는 대신에 삶에 나타나는 기쁨과 환희의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실제 삶을 보면 행복이라는 단어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가정이나 건강을 생각해 볼 때 적지 않은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두 아들은 전쟁에 참여해서 큰 상처를 입었고 그 또한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얻어 휠체어에 의지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손이 심하게 뒤틀리면서 손가락에 붓을 묶어서 그림을 그려야 했던 것입니다.


  • 마음먹기의 차이

     어느 날 공자가 나라에 관리로 일하는 조카 '공멸'에게 질문했습니다. "네가 일하며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이냐?" 공멸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습니다. "제가 얻은 것은 한 가지도 없는데 잃은 것은 무려 세 가지나 있습니다. 첫째, 제가 해야 할 공부가 많은데 일이 많아서 공부를 제대로 못했고 둘째, 보수가 너무 적어 부모님을 봉양하기도 어려우며 셋째, 관리하는 일이 너무 바빠서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 보니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 이창호 기사의 상하이 대첩

     2004년 10월 12일 농심 신라면배 세계 최강전 바둑대회가 열렸습니다. 한, 중, 일의 프로바둑기사가 다섯 명씩 팀을 이뤄 출전하는 국가대항전으로 이긴 사람만이 다음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이전 대회에서 계속 우승을 했기에 중국과 일본은 한국을 이기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한국 역시 방심하지 않고 이창호 9단을 비롯한 다섯 명의 최강 팀을 출전시켰습니다. 이때 참으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이창호를 제외한 한국인 출전자 전원이 1라운드에서 탈락을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 3라운드에 남은 기사는 중국인 세 명, 일본인 두 명 한국은 이창호 혼자였습니다. 한국이 우승을 하려면 이창호 기사 혼자서 중국과 일본의 기사를 모두 이겨야 했습니다. 드디어 한국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일본과 중국은 축제 분위기에 젖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언론은 이창호 기사의 우승 확률이 3%도 안된다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계속된 3라운드 경기에서 이창호 기사는 다섯 사람을 차례로 격파하고 5연승을 거두면서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이처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대해 일본은 침묵했고 중국은 분노했는데 사람들은 이창호 기사의 우승을 가리켜서 '상하이 대첩'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당시 이창호 기사의 우승을 보면서 중국의 바둑 강자인 창하오 9단은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다른 한국 기사를 모두 꺾어도 이창호가 남아있다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 결혼을 위한 시험

     열정적이고 자유분방한 삼바의 나라로 잘 알려진 브라질 사람들의 결혼 문화를 보면 조금 특별한 데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서 결혼을 하는 문화가 있는데 결혼에 대한 시험에 합격을 해야 결혼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려는 남녀는 전문기관에서 약 열흘 동안 합숙을 하면서 결혼에 관련된 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마칠 때 시험을 치를 자격이 생기고 최종 시험에 합격을 해야 자격 증명서가 나와서 결혼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시험 문화는 과거 부족 사회의 풍습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그들은 결혼을 위해서 통나무를 짊어지고 운반하거나 채찍을 견디는 등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브라질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서 결혼 시험을 준비하지만 간혹 점수가 모자라서 시험에 떨어지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결혼 시험에 떨어졌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고 헤어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도 결혼을 할 수는 있는데 대신 유산 상속 등에서 불이익 당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브라질이 세계에서 비교적 낮은 이혼율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혼 시험제도가 그 이유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브라질이 자유분방한 나라인데 비해서 이혼율이 낮다는 점은 참으로 특이한 사실입니다. 오늘날 갈수록 이혼이 증가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결혼에 임하는 자세를 충분히 새겨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결혼을 생각할 때 당사자 사이에 신의를 지키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결혼을 통해서 가져오게 될 사회적 책임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온전한 결혼생활은 서로 얼마나 잘 맞느냐보다는 다른 점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출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실패를 초월하는 노력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존 크리시'는 영국 추리작가협회의 창립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세계 문학계에 크게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평생 564권의 책을 집필했고 많은 사람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만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이 35세에 작가 활동을 시작한 크리시에게는 특이함 점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서 지도를 받지 않고 독학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 쓸데없는 걱정

     영국의 한 의과대학에서 웃음에 대해 연구를 하다가 이러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어린아이는 하루에 평균 400-500번을 웃는데 장년이 되면 하루에 15-20번으로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잘도 웃던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운데 기쁨을 상실한 채 웃음을 잃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서 찾아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 때문이라 합니다. 우리가 고민하고 염려하는 일들 가운데 얼마나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등목어'에게서 배운다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고사성어가 있는데 바로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분명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맹자의 격언입니다. 가끔 보면 이처럼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목구어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도와 스리랑카, 중국 등 일부 열대 지방에서 서식하고 있는 '등목어'라 이름 하는 물고기는 나무에도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 특이한 물고기는 몸의 길이가 25cm 남짓하며 아가미 덮개에 뒤쪽을 향해 뻗은 가시가 있습니다. 양쪽에 하나씩 있는 아가미 덮개를 뻗어 교대로 바닥을 짚고 꼬리로 밀면서 앞으로 걷거나 나무 위를 기어 올라가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머리 양쪽에도 보조 호흡기관이 있는 관계로 물 밖에서도 며칠씩 버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는 가운데 퍼덕거리다 죽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물 밖의 물고기'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이러지도 저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물고기에게 있어서 물 밖에 있다는 환경이 저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등목어를 통해서 교훈 삼을 수 있습니다.


  • 티니안 섬의 한민족

     남태평양 사이판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쯤 가면 '티니안'이라는 섬이 나옵니다. 서태평양 북 마리아나 제도에 있는 작은 섬으로 인구는 약 3천 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섬입니다. 이곳의 원주민은 차모로족이며 이들 주민들의 표정을 보면 하나같이 여유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성공하고 싶으면

     존 워너메이커는 1838년 미국 필라델피아 변두리의 가난한 벽돌공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2학년이 전부였는데 가난으로 돈을 벌어야 했기에 열네 살부터 서점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근면하게 일해서 미국 최초로 백화점을 설립한 그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백화점 왕'으로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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