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석의 동서남북

수필가, 목사

  • 배려 넘치는 사랑

    임지석/목사·수필가학생인 제레미는 학비를 벌기 위해 한동안 농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너무 가난해서 일터에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물로 배를 채우곤 했던 그에게 어느 날 인부 감독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내가 왜 이렇게 도시락을 많이 싸주는지 이해할 수 없구먼. 누구 나와 함께 도시락 나눠 먹을 사람 없나?" 제레미는 부끄러웠지만 감독에게 도시락을 나눠 먹겠다고 했습니다. 다음날도 감독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를 돼지로 아나? 도시락 나눠 먹을 사람 오세요."


  • 조급함이 벗을 죽인다

    임지석/목사·수필가 인류 역사상 광활한 땅을 정복할 수 있었던 칭기즈칸은 사냥을 나갈 때마다 매를 데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는 매를 끔찍하게 생각해 친구처럼 여기며 길렀습니다. 하루는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시려 하는데 난데없이 매가 자신의 손을 쳐서 잔을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물을 받아 마시려 할 때마다 매는 계속해서 마시지 못하게 했습니다. 칭기즈칸은 몹시 화가 나서 칼을 휘둘러서 매를 베어버리고 말았습니다.


  • 거짓말은 언제나 거짓말

    한국 조선시대 후기 문필가이며 시인인 정수동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여름날, 더위로 인해 서당에서 졸고 있었는데 이를 본 훈장이 불호령을 치면서 매를 들었습니다. 며칠 후 그는 공교롭게도 훈장이 조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훈장은 자신이 자는 것이 아니라 공자님께 물으러 다녀오는 길이라고 둘러댔습니다.


  • 가족, 사랑, 그리고 삶의 의미

    1941년 어느 날, 신경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은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비자가 나왔으니 찾으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유대인들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던 시기였기에 유대인인 그에게 있어서는 생명을 보장받는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쉽게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과 아내에게만 비자가 나왔기에 노부모를 남기고 떠나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노부모를 남겨두고 떠날 수가 없어 미국에 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 도끼날을 세워야 할 때

     어느 날 나무꾼 두 사람이 함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그중 젊은 나무꾼은 힘자랑하듯이 쉬지 않고 나무를 베었지만, 나이 지긋한 나무꾼은 짬짬이 쉬면서 나무를 베었습니다. 저녁이 되었을 때 옆에 쌓여있는 나무를 바라보던 젊은 나무꾼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벤 나무가 당연히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노인이 베어놓은 나무가 훨씬 많았기 때문입니다.


  • 불평하기 전에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에 얽힌 일화입니다. 언젠가 선생은 청년들에게 강의를 한 후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청년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시대를 이끌만한 지도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빨리 계몽이 되어서 민족을 이끌고 일깨울만한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삶의 가장 소중한 보물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한 마을이 적군에 완전히 포위당하자 적군의 장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인 남자들은 모조리 우리의 노예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특별히 생각해서 풀어줄 것이니 속히 마을을 떠나기 바란다. 여자들에게 인정을 베풀겠으니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보물을 한 개씩만 지참하고 이곳을 떠나라."


  • 권리와 의무

     워싱턴 주의 클라이드 힐이라는 마을에서 동전 던지기를 통해서 시장을 선출한 일이 있습니다. 선거 결과 두 후보의 득표 수가 같아 선관위는 동전을 던져서 결정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항의를 하자 선거관리 위원장이 말했습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방법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한 사람만 더 투표에 참여했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에 입을 다물고 말았는데 사실 그것은 모두의 책임이었기 때문입니다.


  • 목계(木鷄)의 평정심

     주나라 선왕은 닭싸움을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선왕은 당대 최고 투계 조련사인 기성자를 불러 자신의 싸움닭을 최고의 싸움닭으로 훈련시켜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열흘이 지나 닭싸움을 할 수 있는지 묻자 한창 사납고 제 기운만 믿고 있으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열흘이 지나고 묻자 "다른 닭의 소리를 듣거나 그림자만 보아도 바로 달려드니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다시 열흘이 지났음에도 다른 닭을 보면 곧 눈을 흘기고 기운을 뽐내고 있으니 더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 섬김의 지도자, 루스벨트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 참전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각 지역 젊은이들이 징집영장을 받으면 큰 도시로 집결해서 밤늦게 야간열차를 타고 전쟁터로 떠났습니다. 그런 이유로 워싱턴의 기차역에 젊은이들이 몰려들 때면 시민들이 나와서 차를 대접하며 응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 중에 밤늦게까지 봉사하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절뚝거리는 다리로 차를 들고 다니며 섬기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