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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의 世上萬事

치과의

  • 김삿갓의 '욕'

    얼마 전 박 대통령이 여야 대표단과의 5자 회동에서 한 야당인사에게 "예전에 저보고 '그년'이라고 하셨잖아요?"라며 3년 전 들었던 욕설을 언급하며 집고 넘어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에서는 뼈있는 농담이었다고 한 반면 다른 측에서는 뒤 끝 있는 행위였다고 비꼬기도 했다. 잘잘못은 차제하고라도 사석도 아닌 공석에서 소위 지도자급들의 언급치곤 어느 쪽이든 적당치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이 일이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욕이 한국 사회 전반에 상당히 만연돼 있는 듯해서다. 그것도 너무 원색적이어서 더 하다. 정치인은 물론 연예인, 법조인 심지어 종교인들 까지 욕설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 계층이 없다. 게다가 학생들의 말은 욕설이나 비어가 끼지 않고는 대화가 안 될 정도라니 참으로 우려스럽다. 그래도 예전엔 운치가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도둑놈도 대들보위에 있는 군자란 뜻으로 '양상군자(梁上君子)'라 하지 않았다던가? 우리 때 만해도 볼썽사나운 사람이 앞에 있으면 '전자(前者)들은 말이야'했다. 자(者)가 '놈 자(者)'자 이니 '앞에 있는 놈'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나마도 남자한테야 할 수 있다손 쳐도 상대가 여성이면 얘기는 달라진다. 웬만한 용기 아니고서는 내뱉기 힘들게다. 표현도 상스럽지만 듣기에도 거북하고 불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일찍이 우리의 천재시인 김삿갓이 일러준 비법이 있으니 말이다. 하루는 그가 어느 집 앞을 지나가는데 그 집 아낙네가 설거지물을 밖으로 뿌린다는 것이 하필 김삿갓이 뒤집어썼다. 과객의 행색이 초라해선 지 이 아낙네 사과는 커녕 홱 돌아서 그냥 들어가 버렸것다. 화가 난 김삿갓 욕을 냅다 하긴 해야겠는데 선비 체면에 막말을 할 수는 없고 해서 그냥 '해해'하고 갔더란다. 웃어 넘겼단 말일까? 한이 많아 세상에 욕하고 싶은 일이 많은 우리 삿갓님께서 그럴 리가 있었겠나? '해'는 한문으로 '년(年)'이요 그것이 두 개, 곧 쌍(?)이니 욕도 그런 욕이 없다. 상대방이 알건 모르건 삿갓님은 시원했을 거다. 이렇듯 욕은 품위와 인격에 직결되므로 피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스트레스 해소에도 일조한다는 긍정적 시각도 있다. 따지고 보면 욕도 우리의 삶의 일부분인 감정의 발산이기도 하다. 실제 욕을 하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지 못해 상스러운 욕설과 악담을 퍼붓는다면 본인은 속이 시원할지는 몰라도 당하는 상대방은 아프고 쓰리다. 해서 욕은 파괴적이고 반사회적이라고는 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욕쟁이 할머니 욕은 친밀감을 높여주기도 하고 음식을 맛깔나게 돋우는 양념이요, 김삿갓의 욕은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아 우리네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또한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함으로써 사회질서에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해학과 기지가 담겨 있는 욕이기 때문이어서 그런 것일 뿐 그렇지 않은 욕은 내뱉은 사람에게 되돌아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원하면 욕하자! 그러나 재치 있고 맛깔나게 하자. 여자한테는 '해해'로 남자한테는 '자자(者者)'로! 이렇게 얘기하면 나도 욕먹으려나? 죄송!


  • 점 하나만 지우면...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남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라는 유행가가 있다. '도로남'노래가사이다. 허나 실상은 '님'에 점하나 붙여 '남'만 만드는 것도 모자라 아예 돌려 찍어 '놈'도 만든다. 어느 시에선가 읊조린 '보고 있어도 그립다'던 그 님도 마음이 뒤틀려지면 남이 되고 나쁜 자식 놈까지 되고 마는 것이다. 눈에 뭔가 씌어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일 때는 얼굴에 있는 마마자국도 모두 다 보조개로 보이지만 미워지기 시작하면 콧구멍도 왜 그리 크게 보이는지 영화 '나바론 요새'의 거대한 대포 구멍 같다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살붙이고 살던 '당신'도 싸움하고 돌아서면 '등신'이 되나보다. 누가 그랬나.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생면부지의 남들끼리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결합하여 한마음 한 뜻으로 살아가는 한 몸이 되니 끊어내지 못해 촌수조차 없는 무촌이란 의미였겠다. 허나 무촌이란 게 무언가 어긋나 한번 등 돌리면 도로 남이 되니 원래의 타인이 되는 것이라는 뜻이었나? 그렇다 해도 도로묵 아니 도로남이면 그나마 낫겠건만 오히려 꿈에서 조차도 보기 싫은 웬수덩어리가 되니 차라리 안 만났을 리만 못한 경우가 되기도 한다. 어째서 그렇게도 그립고 고운님이 점하나 찍어 남이 되어 돌아서고 멍든 상처로 갈라서게 되는가. 그것은 부부가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이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래서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그랬다지? 결혼은 판단력 부족으로 하고 이혼은 인내력 부족 때문이며 재혼은 기억력 부족이라고…과연 그럴까? 그러고 보면 소설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가 왜 남녀가 만나 혼인을 한다는 것은 '부부가 된 것'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부터 부부가 되어가게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는지 알 것 같다. 웨딩마치에 따라 퇴장하는 그 순간부터 싸우고 화해하고를 거듭하면서 양보를 배우고 미운 점까지도 예뻐하게 되면서 검은머리가 휜 머리가 되도록 서로 존중하며 닮아 가도록 노력한다는 말일게다. 그러므로 사랑은 나의 것 반과 너의 것 반만을 합하여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것 전부와 네 것 전부를 내놓아 완전한 하나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마치 젓가락 두 개가 있어야 한 짝이 되고 완성을 이루듯이 그리고 서로 협력해야 공동의 목표로 다가 갈 수 있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 부부란 뜻이다. 조물주가 아담을 잠재우고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이브를 만들었다는 창조이야기. 그 분은 왜 하필이면 갈비뼈를 사용했을까? 그것은 다리뼈는 밟는 습성이 있고 손뼈는 삿대질을 하기 쉽고 머리뼈는 가르치려 들것이고 턱뼈는 말이 많아 싸움 잘날 없을 것이고 어깨뼈는 거들먹거리기 십상이고 목뼈는 교만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갈비뼈는 가슴에 있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보호하며 나란히 동행해 가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잠에서 깨어나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다던 아담조차 이브가 바가지 긁으면 "나 아직도 갈비뼈 많이 남았다"고 했다지 아마?


  • "2호실에 곰보 하나, 갈보 하나!"

    디지털 기기가 발달하면서 청소년 네티즌들의 온라인상 언어문화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심각한 한글 파괴라는 우려까지 나온 지 꽤 되었다. 특히 줄임말들이 그렇다. 잘 알다시피 '훈남'이나 '엄친아'등은 이제 아주 표준말인 듯 착각할 정도로 되었다. 그러나 전혀 알 수 없는 단어는 물론 그 단어조합들이 영어 일본어를 막론하고 뒤엉켜있어 외계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예를 들어 '갈비'는 '갈수록 비호감'이란 말이고 '생선'은 '생일선물'의 준말이라 하는데 그래도 이건 애교라도 있고 나은 편이다. 신조어 '핵노잼'은 재미없다는 말이고 '낫닝겐''은 사람이 아닌 듯 능력이 뛰어난 것을 말하는 영어와 일본어의 합성이다. 웬만한 노력 없인 젊은 시대에 발맞추어 가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허지만 어찌 생각해 보면 줄임말은 옛날에도 있었다. 옛적에 학교칠판 한구석은 주번이나 반장이 분필로 여러 알림을 써 놓는 일종의 메모판이기도 했다. 즉 첫 시간 영어로 시작해서 마지막 미술까지 과목의 첫 글자를 세로로 한줄 곱게 써 놓은 '영수물국상화음미'같은 시간표도 있었고, 떠든 아이들의 리스트도 있었다. 헌데 어느 날 대형사고가 터졌다. 누군가가 칠판에 '생과부 교미 사실'이라고 써놓았는데 하필 그날 첫 시간 들어온 교사가 생~과부 여선생님이었다는데 심한 모욕감을 느껴 범인 색출에 수업은 엉망이 되었다. 드디어 잡힌 범인이 교무실로 끌려가 생활지도부로 넘겨지고 난리를 치고 혼쭐을 내어도 여선생은 분을 삭이지 못했다. 헌데 실상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오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시간표가 공교롭게도 '생물, 과학, 부기, 교련, 미술, 사회, 실과'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응용미술학과를 '응미과'로 줄여 말하듯이 교육미술학과 학생에게 '교미과 전공하세요?'묻는다면 듣기에 거북하지 않겠나? (다행히 실제로 이런 과는 없다.) 한번은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의대 여학생들이 대화를 하는데 이게 영 주위 사람들이 듣기에 거북한 게 아니었는데 정작 본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뻔뻔하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너 생리했니?''아니, 아직 인데.''얘. 나는 이번에 아주 혼났어. 얼마나 양이 많은지.''그랬구나. 나도 곧 시작하려고 하는데 걱정이야.''매번 고역이야...' 듣다못해 옆 신사 분께서 나무라시자 이 학생들 별꼴이란 듯 한번 쳐다보고는 차에서 내려버리더란다. 사실 이들의 대화는 '생리학'시험에 관한 얘기였는데 '학'자를 떼고 주로 병리니 생리니 해부니 하고 줄여서 한 것뿐이었다. 생리학 시험 분량이 많아 무척 고생한다는 얘기였다. 어쨌거나 줄임말은 재미도 있고 편리하겠지만 이렇듯 오해의 소지도 다분한데 젊은 동아리들끼리는 자기들만의 세계를 형성하여 구세대와 차별을 갖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문득 이런 고전 하나가 떠오른다. 한 식당에 남녀 한 쌍이 들어갔다. 종업원이 와서 무얼 드시겠냐고 주문하니 남자 분께서 곰탕을 시켰다. 보통이요? 곱빼기요? 하고 되물으니 보통으로 해 달라고 했다. 이어 여자분 차례가 되어 갈비탕 보통을 부탁했더니, 이 종업원 주방에 대고 큰소리로 외치더란다. '2호실에 곰보하나, 갈보하나 있어요!' 에그머니나. 음식하나라도 잘못 주문했다간 해괴하게 망가진 체면이 될 판이다.


  • 중국의 노벨상 수상과 '쑥'

    2015년 노벨상 시즌의 막이 올랐다. 수상식은 생리의학, 물리학, 생화학, 평화, 경제학, 문학 등 6분야에 노벨상 창시자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 이번 생리의학상은 기생충 연구자 3명으로 아일랜드 출신인 윌리엄 캠벨 미국 드루대학 교수와 일본의 오무라 사토시 기타자토 대학 명예교수, 그리고 중국 중의과학원의 투 유유 교수에게로 갔다. 중국은 축제 분위기다. 중국계 출신이 8차례나 과학 계통 노벨상을 받았으나 중국 국적자로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해외 유학 경력도 박사 학위도 없는'순종 토박이'란 얘기다. 더구나 중국 전통의학이란 데 그 의미가 더 크다. 이번에 대상이 된 그가 말라리아 특효약을 개발해낸 원천은 1,600년 전 동진의 의학자 갈홍의 의서와 중국 대륙에 널린 야생 쑥이었다. 전통 약초를 끈질기게 연구한 끝에 개똥쑥에서 '아르테미시닌'이란 성분을 뽑아 낼 수 있었던 거다. 헌데 '아르테미시닌'은 그리스 신화에서 사냥과 야생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에서 따온 말인데 투 유유 교수의 이름 '유유'도 '사슴이 울며 들판의 풀을 뜯는다'는 시경의 구절에서 따온 점 역시 공교롭게도 아르테미스의 이미지와 닮은 게 우연이었을까? 손으로 뜯어 비벼보면 개똥 냄새가 난다 해서 이름 붙여진 개똥쑥은 우리 한국 에도 많이 자생하고 있는데 쑥은 한국인에게도 빼 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바로 단군신화 때문이다. 단군신화에서 호랑이와 곰은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만으로 100일 동안 동굴 속에서 지내야 했다. 호랑이는 못 참고 포기했지만 곰은 끝내 이겨내고 사람으로 환생하여 단군을 낳아 한민족의 시조가 되었다. 신화에서 시작된 쑥은 액운을 물리치는 주술적 기능이 있는가 하면 한국인의 식생활이나 생활용품 그리고 미용까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이 다양하게 쓰인다. 그 뿐인가? 약리적 기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예로부터 위벽 보호와 간 해독, 생리통 치료에 효능이 있어 한방에서 널리 쓰였다. 최근에는 뛰어난 항암 효능이 입증되면서 더욱 주목 받아왔다. 아울러 쑥은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해 극한 환경이 아닌 곳이면 어디서든 잘 자란다. 핵폭발로 폐허가 된 일본 히로시마에서 가장 먼저 새싹을 틔운 식물이 쑥이라고 할 정도다. 1986년 4월 우크라이나에서 체르노빌 원전사건이 발생했는데 공교롭게도'체르노빌'은 러시아말로 '쑥'이다. 해서 잘 자라나는 걸 우린 쑥쑥 잘 큰다고도 한다. 그러고 보면 쑥은 가장 흔한 잡초이면서도 가장 귀한 생명의 약초인 셈이다. 한해를 마감하는 항상 이 맘 때면 노벨상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심기는 불편하다. 한중일 3국 중에 한국만이 노벨의 문학과 과학의 수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기 싫어하는 한국인의 자부심에 금이 가고 상실감과 공허감을 어쩔 수 없다. 건국신화로부터 생활 모든 부분에 이미 만병통치에 가까운 쑥의 효과를 이용해온 한국인들에게, 특히 빛나는 허준의 '동의보감'을 가진 나라로서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에 무척 부럽고 아쉬워 보이는 마음 감출수가 없다면 나만의 느낌일까?


  • 내 나이가 어때서?

    우스갯소리로 20대의 남자는 성냥불, 30대는 장작불, 40대는 담뱃불, 50대는 화롯불이다. 연령에 따라 화력이 다르다는 얘기다. 헌데 60대는 반딧불이란다. '불도 아니 것이 불인 척 하기 때문이라나? 정말 나이를 먹으면 태우지도 못하는 쓸모없는 불일까? 웬걸. 요즘 젊은이 못지않은 노익장을 과시하는 어른들이 연일 화제다. 올해 100세를 맞은 미국의 돈 펠먼이 '시니어 올림픽'100m 달리기에 출전해 꼴찌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기록은 26.99초로 90세 이상 최고령 그룹에선 당당한 세계신기록이다. 화씨 100도의 폭염 속에서 처음으로 27초벽을 깬 100세 노인의 인생 승리였다. 펠먼의 신기록은 이번 달리기만이 아니다. 100m 달리기 세계신기록을 세운 건 이번이 5번째이며 멀리뛰기, 높이뛰기, 장대높이뛰기, 투원반 종목에서 이미 최고령 세계신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펠먼은 위스콘신 대 재학 시절 체조와 높이뛰기 선수였으나 경제사정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제너럴 일렉트릭(GE)에 취직해 일하다 1970년 은퇴했다. 이후 자녀들의 권유로 '시니어 경기'에 참여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출전 기록이 127회에 이른다. 지난 2011년 캐나다 토론토 워터프론트 마라톤에 출전한 화우자 싱은 8시간 11분여 만에 역시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20여 년 전 불의의 사고로 부인과 자녀를 잃은 뒤 절망에 빠졌다가 삶을 되찾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했다. 그 후89세에 처음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그는 2003년에도 93세의 나이로 토론토 대회 90세 이상 부문에 출전해 5시간 40분 1초로 우승하며 최고령 완주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어디 이것뿐인가? 100세에 수필집을 낸 일본 할머니 시바타 도요도 있었다. 남편과 사별 후 아들의 권유로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모아 둔 돈으로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출판해 일본에서 160 여 만부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녀는 자신의 시에서 '불행하다고 한숨 쉬지 말라'고 했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어떤 능력이나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똑같이 늙어간다. 그러나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노력에 따라 크게 성장하고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게 나타난다. 이처럼 나이를 먹는 것은 나의 선택 밖의 일이지만 자신이 커 가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다. 스스로 빛을 내는 반딧불처럼. 그래서 시인 사무엘 울만은 '때로는 예순 살 노인이 스무 살 청년보다 더 청춘일 수 있다'고도 했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과 열정을 잃을 때 비로소 늙기 때문이란 뜻이다. 오늘의 청년들은 한국을 '헬 조선'이라 부르고 자신들을 'N포 세대'라 하고 심지어 해외로 탈출하려는 이민계까지 든다고 한다. 지옥 같은 현실에 취업도, 결혼도, 미래 등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절망적 사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오죽하면 그렇게 됐을 까만은 그렇다고 포기만 하고 꿈마저 잃을까 참으로 우려된다.


  • 테니스와 인생

    김학천 치과의 2015 US 오픈 테니스 2주일 일정이 엊그제 끝났다. 중고생들이 모이면 농구이야기, 말단 직원들은 축구 이야기, 중간 관리급들은 테니스 이야기, 부장급들은 골프이야기, 나이든 사장들은 바이아그라 이야기를 한단다. 한마디로 나이가 들수록 노는 공이 작아진다는 이야기이다. 누군가 지어낸 우스갯소리다. 헌데 모든 스포츠 가운데 유독 테니스만이 갖고 있는 신비한 단어가 있다. 점수를 내지 못했을 때 '0'이란 굴욕적 단어가 아닌 '러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매력적인 이 단어가 쓰이게 되었을까? 테니스는 프랑스의 왕후 귀족의 놀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0'의 모양이 계란과 비슷하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l'oeuf(뢰프)로 불리었던 것이 영국으로 넘어가 발음하기 쉬운 '러브'로 바뀌었다는 설이다. 스코틀랜드어로 '0'을 나타내는 lafe(라프)가 변화해서 생겼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lafe(라프)가 Nothing이라는 옛날 말 '로브(loove)'로 바뀌었다가 '러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크리켓 경기에서도 점수를 따지 못한 사람 이름에 '0'을 달고 Duck's egg 라고 부르는 걸 봐도 크건 작건 '알'과 관계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비록 지금은 'egg'을 빼고 Duck's 라고만 부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 왕좌에 있는 여자 테니스 선수와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남자 선수의 우연적인 만남이 사랑으로 이어지고 그 사랑 덕분에 하위권 이였던 남자가 윔블던에서 챔피언이 되는 로맨틱 영화도 있었다.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인 영국 영화 제작사 '워킹 타이틀 필름스'의 2005년도 작품인 '윔블던'이다. 30 대 초반의 노장 피터는 세계 랭킹 100위 밖에서 허덕이는 하위권 선수다. 한때는 상위권에 올라 유명세를 탄 적도 있긴 하지만 이제는 돈 많은 아줌마 클럽의 테니스 코치가 될 생각을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러다가 다시 윔블던 대회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호텔의 착오로 세계적 스타 리지의 객실을 방문하게 되고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사랑과 성공으로 이어진다. 이는 테니스 최강의 커플로 알려진 안드레 애거시와 슈테피 그라프를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16세에 프로로 데뷔하여 1994년 US오픈, 1995년 호주오픈을 석권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애거시는 1996부터 슬럼프에 빠지면서 랭킹은 110위 밖으로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9년 프랑스 오픈 우승으로 재기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테니스의 여제 그라프를 만나 재혼했다. 흔히 스포츠는 인생에 비유된다. 테니스도 예외는 아니다. 애거시는 한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테니스는 인생의 축소판 같다. 테니스에서 사용하는 용어들 Love, Break, Service, Advantage 그리고 Fault가 모두 삶에도 그대로 있다'고. 9년 전 지난 9월 4일은 그가 독일의 베커에게 패한 후 23,000여명의 관중들의 기립박수 속에서 21년의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눈물로 코트를 떠난 날이다. 이 날 그는 '팬 여러분의 엄청난 사랑이 코트에서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나를 이끌었고 여러분의 열의와 격려가 인생 최악의 순간에서도 성공할 수 있도록 인도했다'고 감사하며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의 '키스 세리머니'를 보냈다.'아듀 코트!'


  • '시황제'와 치과용 충전재 '아말감'

    이틀 후면 중국은 천안문 광장에서 '항일(抗日)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전승절)행사를 대대적으로 연다. 러시아는 나치 독일이 항복한 날인 5월9일을 전승절로 하는 것과 달리 중국은 일제가 1945년 패전 후 미주리 함상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한 9월2일 다음날인 9월3일을 전승절로 삼는다. '항일전쟁승리'에 의미를 더 두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빠르게 성장하여 대국으로 일어선 중국이 '팍스 차이나'시대의 위세를 떨치기 위해 12,000 명이 넘는 병력과 최신 무기를 총동원해 '대국굴기'의 면모를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마오쩌둥이 신 중국 성립을 선언하고 개국을 기념하기 위해 1949년10월1일에 시작한 국경절 열병식은 중간에 잠시 중단되었다가 건국 35주년이 되던 1984년 덩샤오핑 때 다시 열렸다. 이를 통해 마오쩌둥의 시대를 마감하고 덩샤오핑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전 세계에 알린 것이었다. 이후 열병식은 10년 주기로 바뀌어 건국 50주년이었던 1999년 장쩌민 주석 때와 건국 60주년이었던 2009년 후진타오 주석 때 열렸다. 따라서 2019년에나 열릴 예정인 다음 열병식을 시진핑은 항일 전쟁 승리 70주년 명분을 들어 올해 강행한다. 이는 동북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패권다툼이 가장 민감한 시기에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과시하기 위한 그의 야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취임 이후부터 주도해 온 반 부패 투쟁과 군부 개혁을 마무리 짓는 의미와 함께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란 해석이다. 이를 증명하듯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 판은 지난 해 11월호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커버스토리를 다루면서 그를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에 빗대어 '시황제'(習皇帝- Emperor Xi)라 이름 붙인 바 있다. 시황제가 누군가? 역사상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하기도 했지만 화폐와 도량형, 문자 등의 모든 것도 통일한 인물이다. 게다가 만리장성을 쌓고 로마 못지않은 잘 포장된 도로도 건설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혁명적인 조치를 했다. 어디 그것뿐인가? 불로장생을 위한 선약을 찾는 한편 자신이 묻힐 무덤은 후세에 찾지도 못하도록 있던 산을 밀어내고 새 산을 만드는 등 위장술에도 혀를 내두를 정도지만 그 규모가 또 얼마나 방대한지 40년이 지난 아직도 발굴 중이다. 앞으로도 100년은 더 걸릴 것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지하에 아방궁을 짓고 지상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수은으로 굽이쳐 흐르는 듯 강과 바다를 만들고 물고기의 기름을 이용하여 대낮 같이 밝혀 놓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하 천정에는 해와 달과 별의 천문도도 만들어 조명하였다 하니 가히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 황릉의 출토작업 중 수은관이 파괴될 경우 발생할 중독사고가 우려되어 발굴을 못한다는 설도 흥미롭다. 수은은 인체에 해롭기 때문이다. 헌데 수은에 대한 논란은 치과계에서도 있었다. 1990년 CBS 60Minutes에서 수은이 섞인 치과용 충전재료 아말감에 대한 추정된 위험성에 대하여 방영된 후부터다. 그러나 미국치과의사협회와 FDA는 당시까지 과학적 근거에 의해 얻어진 자료에 따라 알러지가 없는 사람에게는 문제성이 없는 안전한 재료라고 밝혔다. 수은 그 자체로는 위험한 성분일 수는 있어도 일단 다른 재료와 합금이 된 아말감은 마치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여 물이 되는 이치와 같다는 예를 든다. 수소 그 자체로는 폭발성이 있고 산소는 불을 붙이는 산화성이 있으나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안전한 상태의 물이 되는데, 수은이 들어간 아말감이 위험하다는 것은 마치 물이 폭발성이나 산화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논란은 그치지 않는다.


  • 윔블던 '흰색 전쟁'

    윔블던 테니스대회는 오랜 전통과 권위, 독특한 규정을 자랑한다. 고색창연한 센터 코트와 녹색의 잔디 그리고 영국 왕실의 색인 자줏빛으로 이루어진 윔블던이 만들어낸 분위기는 전 세계 테니스인의 로망이다. 1877년 영국 런던에 위치한 '전 잉글랜드 크로켓 및 론 테니스 클럽(All England Croquet and Lawn Tennis Club)'에서 시작된 윔블던은 테니스 선수라면 누구나 한번은 참가하고 싶어 하는 대회다. 윔블던 창설을 시작으로 4년 뒤인 1881년엔 US오픈, 그로부터 10년 뒤인 1891년에 프랑스 오픈, 그리고 다시 한참 후인 1905년에 호주 오픈이 시작되어 4대 메이저 대회가 되었다. 각국의 대회마다 다른 성격으로 시작된 나름대로의 명칭들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긴 했지만 종주국 영국의 윔블던 공식 명칭은 'The Championships'이다. 나라이름조차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 세상에서 이것만이 유일무이하고 최고라는 자부심이라기 보단 오만에 가까워 보인다. 게다가 이 윔블던은 130년을 넘게 이어온 역사만큼이나 몇 가지 독특한 전통 또한 양보가 없다. 그 중 하나가 변치 않는 흰색 의상이다. 윔블던은 출전 선수들에게 흰색 유니폼만을 허용하는 엄격한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티셔츠와 반바지, 양말뿐 아니라 신발에 안경까지 온통 흰색 일색이다. 신발 바닥까지도 흰 색이어야 한다. 심지어 여성 선수들의 스커트 아래 입는 속옷이나 어깨로 들어나는 브래지어 끈까지도 논쟁거리다. 미국은 이 전통을 오래 전 폐지했지만 윔블던의 전통에는 변함이 없다. 2013년 '테니스의 황제'로저 페더러는 오렌지색 밑창 테니스 화를 신고 출전했다가 조직위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세계 랭킹 1위였던 아가시는 항의 표시로 노란색 고글을 낀 적도 있다. 이외에도 개인적인 취향을 나타내고 싶어 하는 일부 여자 선수들이 항의의 표시로 색깔 있는 언더웨어를 입거나 브래지어를 착용하자 윔블던 조직위는 지난해부터 여자 선수들의 속옷도 흰색으로 규제했다. '흰색 전쟁'인 셈이다. 그러나 이렇듯 전통을 사수하려는 윔블던이 끊임없이 흰색 권위에 도전하려는 선수들의 다양한 시도 사이에서 약간의 규정을 완화하면서 시대의 흐름에 동참한 면도 있긴 하다. 그러면서도 윔블던만의 고유성을 유지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내고 있다. 일례로 엄격한 흰색 규정은 불변이면서도 유니폼의 스폰서 로고와 옷의 끝자락 그리고 손목이나 헤어밴드와 같은 액세서리에만 컬러를 허용한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선수들의 치아까지도 더 하얗게 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근래에는 종전과 달리 치아를 단순히 보존하고 관리하려는 기본적 단계에서 벗어나 아름답게 보이려는 심미적인 면에 관심 갖는 경향이니 그렇게만 하면 화룡점정, 더욱 완벽할 텐데 말이다. 옛말에도 미인의 조건으로 단순호치 (丹脣皓齒)라 하여 입술은 붉어야 하고 치아는 하얗게 빛나야 한다고 했다. 확실히 하얗고 쭉 고른 치아로 밝게 웃는 모습은 그냥 보기에 아름답기도 하지만 자기 관리를 잘하는 능력 있고 부지런한 사람의 적극적인 태도와 함께 깔끔해 보인다. 성서에서 솔로몬도 '너의 이는 마치 털 깎은 암양이 욕탕에서 나온 것 같구나' 하고 노래했듯이 아름다운 치아는 사람의 인상과 품위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어서다.


  • 민들레와 '사자의 이빨'

    화사하게 들판을 수놓는 꽃은 역시 황금색 민들레다. 민들레가 한창이면 어린아이들은 마른 하얀 포자들을 불어 날리며 노는 걸 즐긴다. 민들레는 장미나 글라디오라스 처럼 화병에 꽂혀 식탁으로 초대받을 정도로 아름다워 보이진 않지만 더러는 스프나 와인 혹은 오믈렛의 재료로 식탁에 오르기도 한다. 어린이들의 꽃으로 불리는 이 민들레는 영어로 'dandelion'이다. dan(dent)은 '치아'란 의미로 치과와 관련 있는 단어에 주로 쓰인다. de는 '의(of)'이고 lion은 '사자'이니 이는 곧 '사자의 이빨'이란 뜻이다. 민들레꽃이 사자의 어금니처럼 생겼다는 뜻이다. 또한 하늘을 향해 뻗은 이파리의 모습은 마치 사자의 용맹을 보이는 갈기를 닮았다. 해서 민들레와 사자, 치과는 인연이 깊다. 헌데 최근 사자와 치과의 악연이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다. 다름 아닌 한 사자의 참혹한 죽음 때문이다. 짐바브웨의 명물 사자 '세실'이 사냥꾼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것이 밝혀지면서 이른바 '스포츠 사냥'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세실을 죽인 미국인 치과의사 월터 파머에 대한 공분이 전 세계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세실은 야성적인 검은 갈기로 짐바브웨 황게 국립공원을 찾는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 높은 '국민사자'였다. 또한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팀이 이동 경로와 생태를 연구하고 있는 사자이기도 했다. 이번에 옥스퍼드대학 연구팀이 세실의 몸에 부착한 GPS 기록을 살펴본 결과, 세실은 국립공원 인근에서 활을 맞고 40여 시간 고통스럽게 배회하다가 머리는 잘리고 가죽도 벗겨진 채 죽었다. 사자 머리를 박제해 스포츠 사냥의 '트로피'로 소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헌데 파머가 쏜 화살에 맞은 세실이 공원 바깥으로 나가 사유지에서 배회하는 것을 추적해 총으로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국립공원 내에서는 사냥이 금지돼있지만, 공원 밖 사유지에서 사냥하는 것은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파머와 사냥 도우미들이 세실을 공원 밖으로 유인해 살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파머의 잔혹한 행위에 대한 비난과 인신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세실과 파머의 악연은 이름에서도 기인하는 것 같다. 세실이란 이름은 '앞을 못 본다'는 뜻이고 파머는 필그림들이 순례를 할 때 기념으로 팜트리 가지를 가져가는 사람이란 뜻이다. 슬프게도 사자 세실은 파머의 흑심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파머는 제 이름 값대로 사냥의 기념으로 사자 머리를 챙긴 것이다. 아울러 민들레 꽃말은'감사'이기도 하지만 '무분별'이란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사자 사냥을 전통으로 삼는 원주민 마사이 족마저 오랜 전통을 버리고 사자 보호에 나서는 마당에 미국 부유층들이 남의 나라 땅에서 자행하는 무분별하게 도륙하는 '트로피 헌팅'은 스포츠도 취미도 아니다. 야생동물의 씨를 말리는 동물 학살 행위일 뿐이다.


  • 조지 워싱턴의 자화상

    지난 13일은 20세기의 위대한 인물 사진작가로 손꼽히는 유세프 카쉬가 93세를 일기로 미국에서 세상을 떠난 지 13주년이 되는 날이다. 카쉬는 대 스타는 물론이고 예술가, 과학자, 왕족, 대통령, 수상 등 최고의 자리에 있는 인사들을 유명한 일화와 함께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다. 처칠, 케네디, 후르시쵸프, 카스트로, 헤밍웨이, 아인스타인 등 세계적인 인물 치고 그의 렌즈에 안 잡힌 사람이 없다. 해서 그의 카메라 앞에 서지 않고는 '전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주로 흑백사진을 즐겨 하던 카쉬는 사진 찍기 전에 잠시 상대방과 대화를 한다. 그러면서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하거나 당황하게 함으로써 자기도 모르게 나타내는 가장 솔직한 순간의 표정을 잡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아인스타인에게 종교에 대한 질문을 하여 그가 약간 거북한 듯이 머뭇거리는 표정을 짓는 순간을 잡는 식이었다. 윈스턴 처칠을 만났을 때였다. 카쉬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별안간 그가 가장 즐기는 시가를 그의 입에서 빼냈다. 왼손을 왼쪽허리춤에 대고 오른 손으로는 의자 등받이를 잡은 이 양반 순간 몹시 불쾌해진 얼굴로 약간 찡그리고 심술궂은 얼굴을 했다. 이 모습이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의 유명한 사진인데 근엄해 보이지만 실은 화가 나 있는 상태다. 사진이 발달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화가들이 물감으로 그렸을 뿐 유명인의 자화상이 그려지는 데 일화가 많기는 마찬가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예수의 모델로 죄 없고 선함을 나타내는 얼굴을 찾기 위해 수 백 명의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예수와 열 한 명의 제자들을 다 그리고 난 7년 후에 마지막으로 배반자 유다의 모델로 흉터가 있고 죄악으로 가득한 얼굴을 가진 사람을 죄수들 중에서 찾아 그렸는데 알고 보니 전에 예수의 모델이었던 동일한 인물이었다는 설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태도에 따라 같은 인물이라도 이렇듯 선과 악의 다른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조지 워싱턴은 어땠을까? 그는 치과 질환을 몹시 심하게 앓았다. 그래서 그의 자화상 중에서는 잇몸에 생긴 고름이 볼을 뚫고 나와 생긴 심한 흉터가 얼굴 왼쪽 뺨에 있는 것이 있는데 이 그림은 찰스 필의 작품으로 대중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와 달리 우리가 흔히 보는 1 달러짜리에 있는 그의 모습은 마지막 남아 있던 이를 뽑고 난 후 움푹 들어간 뺨을 살려내기 위해 길벗 슈트와트가 솜 덩어리를 둥글게 말아 양쪽 입안에 넣고서 그린 것이다. 그 덕에 장군의 기백 있고 강한 원래의 모습과는 달리 유순한 할머니 같은 인상이 됐다는 혹평이다. 그러고 보면 사실의 본질이 작가의 의도에 따라 언제든지 본래와 다르게 왜곡된 모습으로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작가에게는 작품성과 전문성 못지않게 바른 인식과 책임의식도 요구되는 게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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