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석의 동서남북

수필가, 목사

  • 이런 직업의식 보셨나요?

    언젠가 신문을 통해서 한 위대한 보통사람에 대한 기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위대할 수 있었던 사실은 돈이 많거나 권력을 가졌거나 유명세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주인공은 오클라호마 농장 노동자로 태어나서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100세 생일을 맞이하여 퇴직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은 자신의 아내가 숨진 단 하루를 빼놓고 8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한 직장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100세의 나이가 되도록 일을 했으며 한 직장에서 81년간 일을 했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감동 그 자체입니다. 30여 년 전 미국에 처음 와서 경험했던 사건이 기억납니다. 당시 다운타운에 있는 한 빌딩에서 밤 청소를 했는데 엘리베이터를 수동으로 작동해야 하는 오래 전에 지어진 빌딩이었습니다. 이때 한 평도 안되는 공간에서 40년 이상 엘리베이터를 작동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좁은 공간을 근무지 삼아서 그처럼 오랫동안 일을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던 그를 보면서 미련하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닫게 되었지만 그는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오늘의 미국을 있게 만든 영웅이었습니다. 이처럼 꾸준하고 한결같은 직업정신은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를 윤택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직업정신은 쉽게 실증을 느끼며 자주 직장을 바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귀한 교훈이 됩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에도 주어진 길을 꾸준히 가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성공적인 인생을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81년간 한 직장을 섬기면서 그 누구보다 열심을 다해서 일할 수 있었던 그 사람이야말로 최선의 인생은 산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직장에서 이러한 사명감으로 일한다면 우리의 삶도 진정 행복할 수 있습니다.


  • '헤일리'가 보여준 삶의 자세

    헤일리는 태어난 지 2년 만에 선천성 조로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정해진 시간밖에 살 수 없었는데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보다는 죽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비관을 하지 않았고 얼굴에서는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담당의사는 헤일리가 13년을 살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녀는 그 기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짧다면 짧다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더없이 의미 있는 삶을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그녀는 조로증으로 언제 이 땅을 떠날지 모르는 고통 중에도 낙심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기간 동안 그 누구보다도 경험할 수 없는 멋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의사가 예상했던 13살 되던 해에 자서전인 '나이보다 일찍 늙기'를 출간했는가 하면 16세의 어린 나이에 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100세가 넘을 만큼 쇠약해진 17세 되던 어느 날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는 비록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의 조로증 환자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습니다. 자신보다 긴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짧지만 굵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늘고 긴 인생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남기게 될 인생의 흔적들은 사람들의 머리에 기억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슴속에 살아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은 어제까지 살다간 사람들이 그토록 누리고자 했던 시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의미 없이 보내고 있을 그때가 조로증 환자에게 있어서는 생명과 같이 귀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고 날마다 의미 있는 삶을 이루었으면 합니다. 헤일리와 같이 삶의 보람을 마음껏 누리면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뜨거운 감자' 동성 결혼

    전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하지만 미국 최대의 장로교단이 동성결혼을 수용했다고 합니다. 미국장로교(PCUSA)는 결혼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는 개정안을 과반수 노회들의 결정에 따라 승인하게 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에 있었던 교단 총회에서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 아닌 '두 사람의 결합'으로 바꾸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교단에 속해 있는 한인 목회자들은 이러한 흐름에 대해 적지 않게 우려하는 분위기입니다. 다수의 한인교회들은 이와 같은 결정에 반대하여 교단을 탈퇴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아무리 사회적인 흐름이라지만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이러한 일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목사나 교회가 개인의 신앙과 판단에 반하는 결혼식을 집례 또는 허용하도록 강요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택받은 목회자로서 신앙과 양심을 따라 직무에 감당하는데 있어서 적지 않은 고민이 될 것임은 분명한 일입니다. 동성애와 이에 관계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처럼 기독교계에 뜨거운 감자 같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계는 현실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 사이에 심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기독교 안의 동성결혼에 대한 인식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기독교계도 성공회, 루터교단, 그리스도 연합교회 등은 현재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있으며 감리교단 등은 한창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보수 복음주의 교단을 비롯한 가톨릭은 결혼에 대해 전통적인 견해를 따르는 입장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의 제도를 창조하신 이후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서 이러한 원칙이 바꿔진다면 더 이상 결혼의 의미도 찾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 행운이 의미하는 것

    주위에 보면 복권에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 호기심에서 한두 장 구입하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메가 복권이 등장하면서 복권의 당첨금도 천문학적인 숫자로 치솟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여기에 당첨될 확률이 1억 7천만분의 일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성인 인구를 1억 7천만으로 가정하고 이들 모두가 복권을 한 장씩 샀다고 했을 때 그 중에 한 사람이 당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통계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복권에 당첨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행운이란 이처럼 뜬 구름 잡는 것 같은 일로서 이를 기대하는 사람은 결코 행운을 누릴 수 없습니다. 어쩌다 그들의 인생에 행운이 찾아온다 해도 오직 행운일 따름이지 행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요행으로 이룬 부는 오래 가지 않으며 쉽게 얻은 돈이 쉽게 나간다는 말입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결국 그들이 소원했던 행운이 그들의 인생에 불운으로 작용했던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운이란 이와 같이 운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운은 많은 경우 이로 인해서 그들이 겪게 될 불운과 맥을 같이합니다. 행운을 잡았다고 생각하며 흥분하고 있을 때 불운의 그림자가 슬그머니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행운보다 행복을 찾아야 하는데 구하기 힘든 행운을 쫓을 것이 아니라 주어진 행복을 맛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 클로버는 찾기 힘들지만 행복이라는 이름의 세잎 클로버는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행운을 얻기는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행복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는 말입니다. 행운이라 이름 하는 괴물은 행복을 바라보는 눈마저 멀게 하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 '강철왕'이 선택한 후계자

    강철왕으로 잘 알려진 카네기가 은퇴하기 전에 후계자를 발표했습니다. 세계의 모든 이목은 막대한 부와 명예를 가질 수 있는 자리에 누가 앉을 것인가에 쏠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카네기는 자신의 후계자로 의외의 인물인 쉬브를 임명했는데 그는 중학교도 나오지 못한데다 회사에 청소부로 입사했던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이 카네기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는 그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카네기가 쉬브를 후계자로 지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의 성실성과 책임감에 있었습니다. 카네기가 친히 경험했던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사명감으로 감당했습니다. "쉬브는 내가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하는 청소부였네. 정원을 청소하라고 하면 항상 그 주변까지 즐겁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곤 했지. 나의 비서로 일할 때에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공부하며 기록하더군. 이러한 사람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으면 누구에게 물려주겠나? 좋은 대학을 나온 유능한 사람은 많이 있지만 이같이 자신이 맡은 일에 성실과 책임감으로 임하는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법이지." 그러한 의미에서 그 누구도 가진 능력이 부족하거나 처한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불평불만을 일삼기보다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때 크고 작은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인생길에 정답은 없지만 자신이 노력하는 만큼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카네기가 쉬브라는 사람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 수 있었던 것처럼 범사에 성실과 책임감으로 행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보상이 따릅니다. 그 누구든지 주어진 삶에 대해서 감사와 성실과 인내로 임할 때 온전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카네기가 후계자로 삼았던 쉬브는 능력이나 재주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성실과 책임감으로 맡은 일을 잘 감당하는 한 사람의 청소부였습니다.


  • 고독이 부른 비극

    서울 용산구 보광동 다세대주택 1층의 다섯 평짜리 단칸방에서 수년째 홀로 살고 있던 79세의 장 모 씨에 대한 사연입니다. 이분은 슬하에 자식을 다섯 명이나 두었지만 올해도 쓸쓸하게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부양을 하는 대신 정부에서 매달 지급하는 기초생활수급비를 의지하여 살아왔습니다. 하루 한 끼를 컵라면으로 때우는 가운데 노환이 겹쳐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이후 심한 폐결핵을 앓다가 단칸방 침대에 누워서 외로이 숨졌습니다. 현대인들이 겪게 되는 무서운 질병 중에 하나가 바로 외로움입니다. 세상에서 넉넉히 물질을 소유한 채 명예와 인기를 누리는 사람도 고독이라는 질병만은 이겨낼 방법이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경우를 보더라도 곁에서 돌봐줄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건강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이분을 뒷바라지 했던 사회복지사에 따르면 "움직이는 것조차 힘에 부치자 와서 컵라면에 물만 부어 달라는 부탁을 해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시신을 발견했을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이분의 통장엔 잔고가 단 27원뿐이었습니다. 물질까지 동이 난 가운데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철저히 혼자된 몸으로 이 땅을 떠나갔던 것입니다. 무엇이 이분의 삶을 이처럼 고독으로 몰아가게 되었는지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고독이란 세상의 그 무엇을 가지고도 치유하기 힘든 질병입니다. 가족이나 이웃의 따뜻한 관심만이 고독을 느끼는 사람에게 위로를 더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와서 고독하게 살아가던 삭개오라는 사람을 만나주셨듯이 그분의 사랑으로 찾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조금만 눈을 뜨고 보면 주변에 고독으로 몸부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수많은 날 양로병원 침대에 누워서 애타게 가족을 찾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의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적어도 고독사라는 비극은 멈출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 '다른' 것과 '틀린' 것

    사람들에게 '+' 표시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수학자는 덧셈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합니다. 목사는 십자가라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라 할 것이며 간호사는 적십자, 약사는 녹십자라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사람들이 매사에 철저히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다른 사람은 자신과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비판을 가하기 이전에 이해를 해야 하는 대상임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화를 불러오는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건데 이러한 사건들은 분명 자신과 다른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발생합니다. 이 땅에 있는 70억이 넘는 사람들 중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생김새는 물론 생각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나를 닮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많은 때 전쟁터와 같이 치열하게 싸움을 하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곳입니다. '틀리다'는 잣대로 다른 사람을 재단하다보면 누구하나 자신과 맞는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오직 자신의 생각과 틀린 사람만 가득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꿔서 상대방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부터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해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 생각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낼 것이 아니라 그도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을 때 종교나 사랑이나 이념이나 그 어떤 것을 통해서도 다투는 일이 많이 줄어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당장 가까운 가족부터 인정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다툼은 줄어들고 웃을 일은 늘어나게 됩니다. 상대방은 나와 다를 뿐인데 그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감정을 발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 어떤 러브 스토리

    67년을 해로한 부부가 5시간 차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화제의 주인공들은 켈리포니아의 한 농장에 살았던 금년 90세의 플로이드 할아버지와 89세의 바이올렛 할머니입니다. 이들은 초등학교 시절 처음 만났는데 2차 대전을 맞이하여 남편이 해군에 입대하면서 헤어질 뻔 했지만 다시 만나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러브 스토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딸의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가 생전에 건강이 썩 좋지 못한 편이었지만 의사가 진료를 오면 항상 자신보다 어머니를 먼저 진료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70년 가까이 서로를 위해서 존재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같이 사는 동안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었으며 위로가 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장례식 때 부모들이 남긴 러브레터를 공개했는데 전쟁기간 동안 나누었던 수많은 편지에는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불화로 쉽게 갈라서고 있는 가정에 큰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예전에 부모님들은 한번 결혼하면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해로하며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업이요 주님을 호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삶의 터전입니다. 부부가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하나를 이룰 때 가정이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움에 처할수록 주님이 인생에 하신 일을 생각하면서 사랑으로 연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부사이에 이루는 사랑은 아무리 지나쳐도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생각입니다. 부부가 평생을 동고동락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가정을 이룸으로써 이처럼 고귀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 男 손님은 왕, 女 손님은 여왕

    L.A 근교에 있는 한 식당은 늘 손님들로 북적이는데 그렇다고 음식 맛이 특별하거나 값이 싼 것도 아닙니다. 이 식당의 장점은 손님에 대한 관심인데 입구에는 '손님은 왕'이라고 적혀있으며 남자화장실에는 '왕' 여자화장실에는 '여왕'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손님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이처럼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식당 측의 관심에 감동한 나머지 단골이 된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출신 한 사람이 런던에서 그림을 파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후 그는 전도자가 되려는 생각으로 신학을 공부했고 주님께 삶을 드리기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사역을 시작한 교회에서는 그의 서투른 설교에 대해 비판을 가했고 그는 좌절한 나머지 다른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내 세계적인 화가가 될 수 있었는데 바로 빈센트 반 고흐라는 사람입니다. 훗날 고흐의 전기를 쓴 작가는 이처럼 흥미로운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가지고 있던 열정과 창의력을 보면 그가 만약 전도자로 헌신했더라도 위대한 설교가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인류는 위대한 화가를 얻었지만 위대한 설교자는 잃어버렸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질수록 그로 인한 영향력은 그만큼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은 이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되 칭찬하고 격려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한사람 한 사람에게 지극한 관심을 보여주십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건강 문제, 물질 문제 그리고 이 땅에서 겪게 되는 삶의 문제들을 아시고 관심을 보이신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삶의 문제들을 끌어안고 몸부림하는 사람들을 이러한 관심으로 찾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관심과 사랑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섬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