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석의 동서남북

수필가, 목사

  • 감사를 깨닫는 삶

    하나님은 많은 때 맹목적인 사랑보다는 회초리를 통한 사랑으로 다가오십니다. 잘못 되었을 때 진노하는 사랑은 잘 되었을 때 칭찬해주는 사랑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게 될 때 그 안에 은혜가 있고 이러한 은혜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감사는 이처럼 주어진 감사를 얼마나 깨닫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감사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다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사를 깨달을 줄 아는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감사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멕시코로 관광을 갔다가 겪게 된 일입니다. 찾아간 곳은 한 샘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고 곁에 있는 다른 샘에서는 찬물이 나오는 냉 온천 지대였습니다. 이곳에 있는 동네 아낙네들은 아주 편리하게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더운물로 빨래한 후 바로 뒤돌아서서 찬물에 빨래를 헹굴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전도를 할 목적으로 빨래하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렇게 편리한 샘들도 다 만드셨습니다." 그러자 한 여자가 불평하듯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기왕이면 이 샘물에서 비눗물까지 나오게 해 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혹시 우리도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삶 가운데 무디어져 가고 있는 감사를 회복해야 하는데 감사를 깨닫지 못하면 감사거리를 가지고도 감사를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감사거리를 가지고 있어도 원망이나 불평불만을 일삼게 된다는 말입니다. 가진 것이 있어도 불평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요 가진 것이 없어도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란 그것을 깨닫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요 선물입니다. 삶의 현장에 나타나는 작은 일부터 넉넉히 감사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

    한 아버지가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다가 그만 교통경찰의 단속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차를 세우고 운전면허증을 내밀며 그 밑에 만 원짜리 몇 장을 감추어 건네줬습니다. 돈을 본 경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버지를 보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이 신기해서 아버지를 바라보니 아버지는 "얘야 괜찮다, 다들 그렇게 한단다." 하고 말해주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이 아이가 방학을 맞이하여 과일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보니까 주인은 보이는 곳에만 싱싱한 과일을 올려놓고 오래된 과일은 뒤에 감춰 두었다가 살짝 끼워서 파는 방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다들 이렇게 해서 과일을 판단다." 아이가 성년이 되어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회사에서 횡령 사건을 저지르고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달려온 아버지가 아이에게 다그칩니다. "아이고 이놈아! 넌 도대체 누굴 닮은 거냐. 너는 왜 가르치지도 않은 짓을 하니?" 그러자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말합니다. "괜찮아요 아버지, 다들 그렇게 하는 걸요. 저는 그냥 재수가 없어서 걸린 것뿐이에요."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이다'는 말이 있는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바르고 양심적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어른들의 모습은 온전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순간적인 말이나 행위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준다면 그들에게 악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일이 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 앞에서 무심코 하는 행동이 그들의 평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거울에 비추어주듯이 정직함으로 행할 때 그들이 이를 본받고 이러한 가치관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지난 25년을 정들여 살았던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한동안 적지 않은 감회에 젖어야 했습니다. 미국에 이민 온 이후로 한 장소에서 사반세기를 지내며 겪었던 이런저런 기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목회를 시작하기 전 세상에서 사업을 할 때 장만했던 집인데 같은 장소에서 이처럼 오랫동안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특별히 아이들이 이곳에서 초·중·고교를 다 다녔기 때문에 우리 가족에게는 더없이 귀한 보금자리요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사를 하는 일이 엄청나게 스트레스가 된다는 통계도 있듯이 이번에 이사하는 것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살던 집을 팔고 새 장소에서 집을 사는 일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시간을 맞춰서 에스크로를 마감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집을 사고파는 절차와 과정이 녹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간 살아오면서 모은 가구며 세간들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었다가 버려야 했던 사실은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얻게 된 커다란 교훈입니다. 평소 한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타운에 살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금번 이사는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이곳 타운은 평소에 생각지 못했던 편리함과 불편함이 함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아파트나 콘도가 많이 있는 관계로 답답하고 복잡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가는 곳마다 자동차 주차공간을 찾아야 하는 것도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반면 개인적으로 편리한 점도 있는데 우선 일터와 가까이 있다 보니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주말이나 저녁에 시간을 활용해서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한마디로 예전보다 훨씬 다이나믹해진 삶의 문화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 물과 같이 삽시다

    물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식물이나 동물을 막론하고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물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생수라고 표현하셨으며 이 땅에 오셔서 물과 같은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주님을 닮아서 물과 같이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첫째, 물은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찾아갑니다. 물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마다 조건 없이 바치며 한 방울도 남김없이 쏟아 부어줍니다. 어떠한 환경에도 대가를 초월하여 자신을 주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도 온 인류를 사랑하심으로 마지막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물 한방을 피 한 방울 남김없이 쏟아 부어주셨던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물은 우리에게 헌신적인 겸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은 항상 낮은 곳을 찾아 임하기를 좋아하는데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 고집을 부리는 일이 없습니다. 높은 곳에 있으면 있을수록 낮아지기 위해서 쉬지 않고 낮은 곳으로 찾아갑니다. 주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은 곳으로 임하시되 십자가에 죽기까지 겸손을 보여주셨던 사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셋째, 물은 우리에게 다른 것을 포용하는 너그러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은 담기는 그릇의 크기에 관계없이 잘 적응하는데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거기에 맞춰서 어울리기를 좋아합니다.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고 무시하거나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지도 않습니다. 담기는 그릇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서 자신을 부단히 변화시킬 따름입니다. 주님도 이처럼 자신의 스타일이나 방법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사람과도 편벽됨이 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감미사' 운동 어때요?

    우리가 입으로 말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복 중에 복입니다. 때로는 말을 잘못해서 화를 당하기도 하지만 말로서 자신의 생각과 뜻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더 없이 귀한 일입니다. 우리는 감사하게도 말로 품은 생각을 남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에는 생명력이 있어서 한번 입을 떠나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특별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한마디 말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가를 생각해 볼 때 그 위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 사용하는 말 가운데엔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 좋은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감미사'인데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가 그러한 것입니다. 영어로 "Thank you, I'm sorry, I love you"에 해당되는 말로서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말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도움을 받았다 할지라도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를 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잘못에 대해서도 먼저 '미안합니다' 하면서 사과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더불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를 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이와 같은 언어가 빈번하게 사용될 때 그만큼 우리 사회가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러한 언어를 사용하는 일에 인색했다면 이제부터라도 '감미사'를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가정과 교회 우리의 삶의 현장마다 '감미사'의 언어가 계속되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감사하는 마음들이 모여 있는 가정, 사랑하는 마음들이 함께 하는 교회, 작은 잘못까지도 미안해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 삶의 현장은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곳입니다. 우리 각자가 세상에 대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이러한 사명감으로 임해야 합니다. '감미사'의 언어가 존재하는 곳마다 분명 이웃을 섬기는 아름다움이 충만하게 나타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유대인들의 지혜를 교훈삼아...

    세계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유대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가까운 역사만 살펴보더라도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칼 막스, 심리학자 프로이드, 화가 샤갈, 상대성 이론을 주장한 아인슈타인, 세계적 지휘자 번스타인, 영화제작자 스필버그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대단합니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사람들이 또한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작지만 유대인들은 이처럼 자신들이 처한 위치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어떻게 이와 같이 우수한 민족이 될 수 있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이러한 저력을 나타낼 수 있었던 사실을 탈무드 교육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들이 토라의 가르침을 따라서 사는 가운데 미슈나가 생겼는데 토라는 성경이요 미슈나는 장로의 유전이라 할 수 있는 예식서입니다. 또한 미슈나를 따라서 사는 가운데 게마라가 생겼는데 게마라는 미슈나의 해설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로의 유전을 잘 해석한 게마라를 정리하면서 지혜서인 탈무드를 얻었다고 합니다. 결국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가운데 이러한 지혜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자녀들에게 그들의 언어를 가르치고 그들의 음식과 전통을 지키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민자의 신분으로 미국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의 고유 언어인 한글과 전통 음식인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치는 일에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가르쳐준 지혜만 보더라도 유대인들의 탈무드 못지않게 수많은 지혜를 더해줍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바탕 위에 조상들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유대인들처럼 인정받는 민족이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는 우리가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는 목적이 되기도 하고 자녀들에게 보람된 삶을 가르치는 지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2인자가 되십시오

    컴퓨터의 황제로 불리는 빌 게이츠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의 창업자로서 세계 굴지의 갑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철저히 보필하면서 뒤에서 헌신했던 스티브 바머 (Steve Ballmer)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스티브는 하버드 대학에서 같이 수학한 빌을 20여 년 동안 한결 같이 보좌했습니다. 그는 빌의 수하에서 회사의 2인자로서 역할을 감당했는데 빌이 일선에서 은퇴하자 비로소 회사의 책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처럼 2인자가 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너나할 것 없이 자기보다 먼저 된 사람을 인정해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일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비록 삼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할지언정 다른 사람을 보좌하는 조연배우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기회만 있으면 자기보다 앞서 있는 사람을 딛고 일어서려는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이를 이용하여 그를 반역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보다 먼저 된 사람이 무능하고 부족할지라도 그를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2인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할 수 있었던 사람 가운데 갈렙이 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며 반역을 일삼는 와중에도 지도자를 따르며 섬기기를 다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도자에게 철저히 등을 돌리는 순간에도 지도자의 편에 서서 힘과 위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빌 게이츠를 그림자처럼 따르던 스티브 바머는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인자로 성공을 하지 못하면 결코 1인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2인자의 삶에 충실함으로써 세계적인 대기업의 1인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1인자가 되길 원하는 만큼 2인자가 되어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이런 직업의식 보셨나요?

    언젠가 신문을 통해서 한 위대한 보통사람에 대한 기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위대할 수 있었던 사실은 돈이 많거나 권력을 가졌거나 유명세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주인공은 오클라호마 농장 노동자로 태어나서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100세 생일을 맞이하여 퇴직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은 자신의 아내가 숨진 단 하루를 빼놓고 8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한 직장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100세의 나이가 되도록 일을 했으며 한 직장에서 81년간 일을 했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감동 그 자체입니다. 30여 년 전 미국에 처음 와서 경험했던 사건이 기억납니다. 당시 다운타운에 있는 한 빌딩에서 밤 청소를 했는데 엘리베이터를 수동으로 작동해야 하는 오래 전에 지어진 빌딩이었습니다. 이때 한 평도 안되는 공간에서 40년 이상 엘리베이터를 작동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좁은 공간을 근무지 삼아서 그처럼 오랫동안 일을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던 그를 보면서 미련하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닫게 되었지만 그는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오늘의 미국을 있게 만든 영웅이었습니다. 이처럼 꾸준하고 한결같은 직업정신은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를 윤택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직업정신은 쉽게 실증을 느끼며 자주 직장을 바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귀한 교훈이 됩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에도 주어진 길을 꾸준히 가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성공적인 인생을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81년간 한 직장을 섬기면서 그 누구보다 열심을 다해서 일할 수 있었던 그 사람이야말로 최선의 인생은 산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직장에서 이러한 사명감으로 일한다면 우리의 삶도 진정 행복할 수 있습니다.


  • '헤일리'가 보여준 삶의 자세

    헤일리는 태어난 지 2년 만에 선천성 조로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정해진 시간밖에 살 수 없었는데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보다는 죽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비관을 하지 않았고 얼굴에서는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담당의사는 헤일리가 13년을 살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녀는 그 기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짧다면 짧다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더없이 의미 있는 삶을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그녀는 조로증으로 언제 이 땅을 떠날지 모르는 고통 중에도 낙심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기간 동안 그 누구보다도 경험할 수 없는 멋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의사가 예상했던 13살 되던 해에 자서전인 '나이보다 일찍 늙기'를 출간했는가 하면 16세의 어린 나이에 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100세가 넘을 만큼 쇠약해진 17세 되던 어느 날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는 비록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의 조로증 환자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습니다. 자신보다 긴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짧지만 굵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늘고 긴 인생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남기게 될 인생의 흔적들은 사람들의 머리에 기억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슴속에 살아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은 어제까지 살다간 사람들이 그토록 누리고자 했던 시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의미 없이 보내고 있을 그때가 조로증 환자에게 있어서는 생명과 같이 귀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고 날마다 의미 있는 삶을 이루었으면 합니다. 헤일리와 같이 삶의 보람을 마음껏 누리면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뜨거운 감자' 동성 결혼

    전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하지만 미국 최대의 장로교단이 동성결혼을 수용했다고 합니다. 미국장로교(PCUSA)는 결혼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는 개정안을 과반수 노회들의 결정에 따라 승인하게 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에 있었던 교단 총회에서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 아닌 '두 사람의 결합'으로 바꾸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교단에 속해 있는 한인 목회자들은 이러한 흐름에 대해 적지 않게 우려하는 분위기입니다. 다수의 한인교회들은 이와 같은 결정에 반대하여 교단을 탈퇴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아무리 사회적인 흐름이라지만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이러한 일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목사나 교회가 개인의 신앙과 판단에 반하는 결혼식을 집례 또는 허용하도록 강요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택받은 목회자로서 신앙과 양심을 따라 직무에 감당하는데 있어서 적지 않은 고민이 될 것임은 분명한 일입니다. 동성애와 이에 관계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처럼 기독교계에 뜨거운 감자 같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계는 현실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 사이에 심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기독교 안의 동성결혼에 대한 인식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기독교계도 성공회, 루터교단, 그리스도 연합교회 등은 현재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있으며 감리교단 등은 한창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보수 복음주의 교단을 비롯한 가톨릭은 결혼에 대해 전통적인 견해를 따르는 입장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의 제도를 창조하신 이후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서 이러한 원칙이 바꿔진다면 더 이상 결혼의 의미도 찾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