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김학천의 世上萬事

치과의

  • '포스트 맨' 최일수

     최근 뉴욕의 한 우편물 집배원이 정년퇴직을 앞두고 담당 배달 구역 주민들에게 직접 전달한 고별 편지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뉴욕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 근 20여 년간 집배원으로 일 해온 한국계 미국인 최일수 씨다. 


  • '죽어서 말한다'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의 일부다.   


  • 보물선

     13세기 몽골 제국은 아시아 동쪽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동을 포함한 서쪽까지 그리고 러시아 남부마저 모두 그들의 말발굽에 무릎을 꿇게 했다. 그리고는 지금의 중국 중서부에서 중동과 동유럽에 이르는 정령 지역에 4개의 칸국(汗國, 한국)을 두었다. 일종의 봉건 제후국이었던 셈이다. 


  •  기내식

     소설가 존 스타인벡은 '여행은 결혼과 같다'고 했다. 여정 중에 일어나는 일을 컨트롤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란다. 그럼에도 여행은 언제나 즐거움과 설레임을 준다. 특히 비행기 여행은 더욱 그러하다. 비행기 자체도 그렇겠지만 기내 서비스에 대한 매력 때문 아닐는지. 그 중에서도 아마 기내식에 대한 기대감 빼 놓을 수 없을 게다.   


  • '축구 전쟁'

     한반도 비핵화 움직임으로 가려져 관심에서 멀어졌던 월드컵 열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축구는 단연 세계 최고의 스포츠라 할 수 있다. 그 어떤 스포츠도 축구만큼 전 지구촌의 열광과 영향력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전쟁의 속성과도 닮았으며 또 정치성까지 띄고 있다. 우리가 대표선수들을 태극전사라 부르는 걸 만 봐도 알 수 있다. 해서 '축구의 사회학'이란 책을 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의 리처드 줄리아노티 교수는 '축구는 국가 간 경합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분석 했는가 하면, '축구 전쟁의 역사'를 쓴 사이먼 쿠퍼는 축구를 '국가 간 대리전쟁'이라고까지 규정했다.    


  • '1표'의 힘 

     뉴멕시코 주에 사는 버드 존슨은 정책에 전혀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투표도 귀찮아하는 게으른 사람이다. 반대로 그의 어린 딸 몰리는 아버지에게 투표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독려한다. 하지만 마이통풍이다. 때 마침 대통령 선거철이 되어 아버지를 등록했지만 투표소에 나타나지 않자 대신 투표한다. 하지만 전산과정에서 오류가 생겨 그 표는 입력되지 않는다. 


  • '2018년 6월 12일'

     지난 해 말 개봉한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가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위장평화 공세 속에서 영국을 지킨 처칠의 일화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처럼 암울한 상황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진영과의 갈등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끝없이 고뇌해야 했던 처칠의 모습이 그려졌다.    


  • '트럼프' 게임

     2013년부터 인기를 끌며 절찬리에 방영하던 정치 드라마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가 있다. 마이클 돕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영국에서 방영한 시리즈에서 모티브를 얻어 미국 정치판으로 재구성하여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 '신발'의 明과 暗

     아베 일본 총리가 이달 초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신발 디저트'를 대접받은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 부부가 마련한 만찬에서 초콜릿 디저트가 남자구두 모양의 그릇에 담겨 나온 것 때문이다.    


  • '안경'

    김학천/치과의   지난 평창 올림픽 때 여자 컬링팀을 이끄는 리더가 안경선배라는 별명으로 신드롬을 일으키더니 최근엔 방송 진행에 나온 안경 앵커가 화제가 되고 있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여러 분야에서 차별의 벽이 부서지고 있는 오늘 새삼 앵커의 안경이 뉴스가 될 정도라는 사실에 사회적 제도나 인식의 경직성이랄까 낙후성에 적지 아니 놀랍다.    


  다른칼럼들